국가적 사회 질서의 법률(法律)과 노랫가락의 선율(旋律)은 사람들이 걸어야 할 바른길을 가리키는 글자인 율(律) 자를 공히 가지고 있다. 이와 비슷한 언어 현상이 고대 그리스어에서도 발견된다. 그리스어 노모스(nomos)는 우선 전해진 규칙과 관습, 나아가 법과 질서를 의미한다. 플라톤은 노모스를 한 사회의 합의된 통치 질서를 넘어선 절대적 이상적 규범으로 드높였다. 두 번째로 노모스는 음악 용어로 선율을 의미한다. 칠현금의 노래 반주에서 들을 수 있는, 음의 장단과 높낮이를 달리하여 아름답게 조화된 가락을 가리킨다. 국가 질서와 음악 질서를 같은 뿌리에서 찾아내려고 한 통찰을 동서양이 모두 공유하는 듯하다.
교육과 통치의 설계에서 이 공통점은 뚜렷하게 확장된다. 플라톤의 ‘국가’는 이상국가의 교육론을 펼치는바 교육은 크게 음악과 체육으로 나뉜다. 음악 교육은 기품 있고 바른 인물로 길러내는 것을 지향하는데, ‘장단과 가락은 영혼의 내부에 아주 깊이 젖어 들며 단아함을 대동하여 영혼을 아주 강력하게 사로잡는다’는 기본 입장에서 출발한다. 음악 교육의 목표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성품이라는 뜻의 에우에테이아(eu-etheia)인데 이를 번역하자면 맑고 바르다는 뜻의 아정(雅正)이 제일 가깝다. 여기서 에우(eu)는 훌륭하고 아름답다는 뜻의 접두사다.
아정(雅正)한 인물은 말과 태도, 자세와 동작에서 훌륭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상태를 보여준다. 우선 말씨나 말이 바르고 깨끗하고 단정한 것을 에우로기아(eu-logia)라고 하는데 번역어를 찾자면 아언(雅言)이다. 또 태도가 정돈되고 조화롭고 고상하고 세상 이치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음은 에우하르모스티아(eu-harmostia)라고 불리는데 번역하면 아행(雅行)이라 하겠다. 또 몸가짐과 자세가 우아하고 품격 있음을 에우스키모쉬네(eu-schemosyne)라고 하는데 단아(端雅)라고 하겠다. 끝으로 에우뤼트미아(eu-rhythmia)라고 하는 것인데 몸짓과 몸동작, 그 모양새와 사위에 보이는, 풀고 끊고 이어지는 동작의 절도를 의미한다. 번역어를 찾자면 아절(雅節)이라 하겠다.
음악을 통해 아정한 인물들을 길러내고, 몸가짐과 말씨와 태도와 몸짓이 맑고 바른 인물들 가운데 철인왕을 선발하고, 철인왕이 바른 통치와 질서로 국가를 다스린다는 것이 플라톤 교육론의 기본적 착상이다. 따라서 통치자는 바른 음악을 세워야 한다. 이를 정음(正音)과 아악(雅樂)이라고 하겠는데, 여기에 반하는 어지럽고 문란한 소리와 노래, 그러니까 음악(淫樂)을 금해야 한다. 플라톤이 보기에 호메로스의 서사시도 여지없이 정음(正音)이 아니었기에 플라톤은 호메로스를 이상국가에서 추방하였고, 오랫동안 그리스 세계의 교육자로 불리는 시인의 노래를 누구도 불러서도 들어서도 안 되는 국가를 만들었다.
하지만 거듭해서 세상 음악은 정음과 정악(正樂)을 벗어난다. 미친 듯 몸을 흔들고 억지로 신체를 꺾고 뒤튼다. 시선은 어지럽고 자세는 기괴하다. 발은 어지럽게 땅을 구르고 높이 튀어 오르기를 반복한다. 모든 태도, 동작과 몸짓이 욕망과 음란, 무질서와 무분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법률론’에서 플라톤의 생각을 방증할 음악(淫樂) 관련 사회 현상을 보고한다. “일찍이 리비우스와 나이비우스의 음률이 제공하는 쾌적한 엄격함으로 채워져 있었지만, 오늘날 음률의 다양한 변화에 따라 희희낙락… 사람들이 목을 비틀고 동시에 눈을 굴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음악(音樂)은 국가의 현재를 드러내는 잣대다. 흐트러지고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에 그와 똑같은 음악(淫樂)이 성행하고, 난잡하고 시끄러운 음악(淫樂)은 세상을 그와 똑같이 만든다. 음악(淫樂)으로 불법과 무질서가 만연하게 되고, 혼돈과 무법은 음악(淫樂)을 키운다. 그런 의미에서 플라톤의 이런 주장은 옳았다. “국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인바 새로운 시가(詩歌)의 도입은 조심해야 한다. 음률의 변화는 반드시 가장 중요한 국가적 법률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어느 대학에는 사계절 홀로 푸르른 소나무의 소리를 듣는 곳이라는 뜻의 청송대(聽松臺)가 있고, 또 경쇠 소리를 듣는다는 뜻의 청경관(聽磬館)이 예전에는 있었다. 편경이라고도 불리는 경쇠는 기역 자 모양으로 다듬은 돌로 만든 악기로, 변하지 않는 맑고 청아한 소리로 국악기를 조율하는 기준 악기라고 한다. 옛말에 군자는 편경 소리를 들으며 변방에서 조국을 지키다 숨져간 충신을 생각한다고 하였다. 사람이 변함없이 한결같은 청아한 소리를 들으면 그처럼 굳건하고 충직한 성품을 얻는다는 뜻이리라. 5월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인물들을 생각하게 된다. 빛고을의 편경 소리가 귀를 때린다. 우리는 귀를 기울여 그 편경 소리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