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회사 근처 편의점에서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돼 보이는 아이의 머리카락에 붙은 검불을 떼 준 적이 있다. 어깨가 넘는 긴 머리인데 뒤통수 쪽과 아래 머리카락에도 마른 잔디인지 지푸라기인지가 잔뜩 묻어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였다. 마침, 편의점 안에 같이 있어서 “잠깐만요. 이모가 머리카락에 붙은 풀 같은 거 좀 떼줄게요”하면서 한참 정리를 했다. 어린 친구는 가만히 있더니 뒤쪽에 머리카락이 대충 정리되자 돌아서서 내 얼굴을 빤히 봤다. 앞머리에도 묻어 있어서 떼 주는 동안에도 별소리 없이 있더니 내가 “다 됐어요. 나머지는 거울 보고 정리하세요”하니 그냥 자기 갈 길을 갔다. 대단한 감사 인사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가장 기본은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아닌가? 요새 젠지 스테어(Zenzi Stare: 상대가 말을 걸어도 반응이나 대답 없이 초점 없는 눈으로 빤히 바라보는 모습)가 있다더니 그 세대보다도 한 참 어린 것 같은데 좀 놀라웠다. 더 놀라운 일은 며칠 뒤 비슷한 일이 또 있었는데 그 친구의 반응도 이와 소름 끼치도록 똑같았다. 아무 말 없이 쳐다보다 사라졌다.
비슷한 일은 또 일어났다. 마트에서 장을 본다고 카트를 밀면서 가고 있는데 앞에 어르신이 뭔가 관심이 있는 물건이 있는지 서 계셨다. 문제는 어르신의 카트가 진입로를 가로로 막고 있어서 지나는 사람들이 무척 불편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분,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관심이 없었달까. 자기가 물건을 보는 데만 집중해서 자신의 카트가 민폐가 되는 걸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시비를 하기는 애매하지만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남의 카트를 치고 지나갈 순 없으니 최대한 이렇게 저렇게 비틀어 간신히 사이를 통과하다 어르신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도 문제가 뭔지 전혀 모르는 표정이다가 응시가 조금 길어지니 왜 쳐다보느냐는 듯이 기분 나빠하는 눈빛까지 도로 왔다. 내 참, 헛웃음이 나왔다. ‘이것 보세요!’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삼켰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가정교육이 이러니저러니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집에 있는 아이도 비슷하니 크게 다를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아, 이 친구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 얘기하는 게 불편하구나.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니까 그렇구나’ 싶었다. 아이가 두세 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땐 곁에서 어른들이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인사말을 열성적으로 가르친다. 고개를 숙여서 인사하는 방법도 알려주고 잘 따라 하면 칭찬이 쏟아진다. 다들 그렇게 알뜰살뜰 보살펴 자란 친구들일 텐데 뭐가 문제인 걸까. 그리고 그 어르신은 나보다 10년은 연배가 높아 보이시던데 그 시간 동안 인사하는 법을 못 익혔을 리는 없고. 내 행동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모르기 시작하면 곤란한 일이 자꾸 생기실 텐데.
결국 그 무거운 입술을 떼고 맞는 상황에 따라 인사하면 아무 일 아닐 것들이다. 내가 본의 아니게 길을 막은 걸 알게 되면 ‘미안합니다’ 하고 얼른 비켜주면 되고 누군가 내게 작은 친절을 주었다면 ‘감사합니다’ 하면 된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서로의 선의에 기대 살아간다. 나와 만나게 되는 사람이 선한 의도를 갖고 있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기저에 있다. 그래야 일상이 자연스럽게 돌아가고 안전하고 편안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 뭐 큰일일까. 약간의 목례와 곁들이면 더욱 효과가 좋은 인사말이 자꾸 잊힌다.
우리 다 각자 살아가지만 서로의 삶에 영향을 끼치며 산다. 내 인사가 저 사람의 하루의 시작을 기분 좋게 했다면 나는 오늘 두 사람에게 기분 좋은 순간을 선물한 셈이다. 반대라면 배로 안타깝다. 조금만 더 서로에게 친절해지려고 하고 그게 어렵다면 작은 인사라도 나누면 된다. 나부터 그러면 이런 마음이 퍼져서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좋은 일과 감정은 자연히 퍼지게 된다. 건물로 들어설 때 누가 문을 잡아준다면 꼭 ‘감사합니다’ 인사를 해야지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이미 일어났다.
최영지 디지털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