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영도에서 ‘똑똑똑 예술가’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주로 고립된 채 혼자 사는 주민을 찾아가서 그들과 함께 예술 작업을 하고 그들을 집 밖으로 불러내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었다. 참여한 예술가들과 주민의 반응도 제법 호의적이었고, 매년 프로그램 결과물을 전시하거나 공연함으로써 사업 성과도 축적해 가는 중이었다.
그해에는 신청자 중에 유독 젊은 남자(시각장애인)가 한 명 섞여 있었다. 그는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기타를 메고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그의 집을 찾았다. 그의 방에 들어서자 역겨운 방향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척 그를 바라보며 앉았다. 그는 애써 나의 시선을 피한 채 옆 모습을 보이며 비켜 앉았다.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주로 질문을 했고 그가 짧게 답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혼자 살고 있으며, 일을 했지만 점점 시야가 좁아지는 병에 걸린 뒤로는 일이 끊겨 장애연금과 기초생활수급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했다. 친구도 없고 심심해서 취미를 가지고 싶다고 했다. 그의 답변은 자주 어긋났으며 어눌하고도 짧았다. 나중에 대답하는 그의 입 모양을 바라보다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래위 치아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그의 입속을 보았을 때 그가 내 머리를 ‘똑똑똑’ 하고 두드리는 것 같았다. 내 머릿속이 외려 역겨운 방향제 향기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대강의 사정은 이랬다. 이가 빠진 지는 4, 5년이 됐으며, 그때 틀니를 했지만 안 맞아서 끼지 않는다고 했다. 주로 죽을 먹으며, 이가 없으니 밖으로 더 안 나가게 된다고도 했다.
사회복지사나 장애인 복지기관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없냐고 물으니 있다고 했다. 그 사람들이 지금 당신의 상태를 아냐고 했더니 안다고 했다. 치과에 가 보자는 사람이 없었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돈이나 물품만 전달하고 숫자와 횟수만 기입하는 형식적 복지가 완강하게 수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설펐던 나는 성급히 오지랖을 부리기 시작했다. ‘먼저 치과부터 가자. 비용이 걱정돼서 그렇다면 걱정 마시라. 해결 방법이 있을 것이다. 기타 배워서 노래해야 하는데 이래서는 노래 못한다. 기타보다 먹는 게 먼저고, 기타보다 사람들과 만나고 친구를 사귀는 게 먼저다. 그것 하나만 바꿔도 삶이 훨씬 재밌어진다….’
돌아와서는 프로그램 운영 담당자에게 항의도 했다. ‘신청자의 상태를 알고 있었나? 그랬다면 치아부터 해결하는 게 먼저 아니냐? 고립된 상태에서 용기를 못 내고 합리적 판단도 안 되는 것 같던데 그것부터 상담하고 해결하는 게 먼저 아니냐? 밥을 못 먹는데 문화와 예술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돌아와서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며칠 뒤 그가 프로그램 신청을 철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유는 뻔했다. 같잖은 놈이 찾아와서는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상관하는 게 귀찮고 성가셨을 것이다. 만약 나 같은 허풍선이가 아니라 ‘코디네이터’가 있었다면 일을 이렇게 그르치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살기 좋아졌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수급 자격을 얻으면 돈이 얼마가 나온다느니 하는 수치로, 물량으로 삶이 결정되는 풍요로운 세상인지도 모른다. 각자의 책상 위에서, 각자의 방안에서, 반듯한 제도 안에서 계량화된 풍요가 넘치는 것도 같다.
다만 선의와 호의를 넘어 그저 그렇게 돼야 하는 일이 그렇게 되도록 하는 일이 이 풍요 속에서 아직 부족하다. 코디네이터가 잘 보이지 않는다.
갈수록 홀로 늙어가거나 홀로 삶을 건사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영도만 봐도 내 엄마만 봐도 그렇다. 그들 중에는 귀찮아서 사람을 멀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리워도 방법을 몰라서 고립된 사람들도 있다. 경제적 심리적 이유 때문에 적절한 방법을 못찾아 삶을 점점 더 벼랑 쪽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코디네이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