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랜센던스(Transcendence)’는 AI가 죽은 과학자를 전지전능한 신적 존재로 부활시키는 내용을 다룬다. 과학자 윌이 반 인공지능 단체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자, 그의 연인은 죽은 윌의 뇌를 슈퍼컴퓨터에 업로드시킨다. 윌의 육신은 죽었지만 의식은 인공지능 속에 되살아난다. AI와 동기화된 윌은 전 세계 인터넷 지식망을 연결해 정보와 지식을 차지하고, 첨단 나노기술을 활용해 병든 사람을 치유하면서 권력을 갖게 된다. 윌을 추종하는 세력들은 늘어나고 급기야 죽어 없어진 자신의 육체마저 첨단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시킨다.
영화 ‘오펜하이머’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기획을 맡은 이 영화는 인간의 욕심으로 탄생해 신적 존재로 부상하는 AI에 대한 성찰을 담으며, ‘인간과 AI는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 하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아닌 게 아니라 AI와 더불어 사는 삶은 보편적 뉴노멀(new normal)이 됐다. AI는 지식 분야에서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고 노동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하면서 의료 진단, 금융 투자, 법률 소송 등에 놀랄만한 기여를 하고 있다. “유료 AI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답하네요”는 SNS 토론방의 유행어가 됐다.
심지어 전쟁과 살상무기에서도 AI가 공공연히 이용된다. 미국은 이란 공습에서 ‘앤트로픽’사의 AI모델 ‘클로드(Claude)’를 사용하면서 AI가 사랑과 평화 대신 세상을 피로 물들이는 전쟁도구로 전락한 것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바야흐로 우리는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기술적 단계를 넘어 ‘AI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 단계에 맞닥뜨려 있다.
대학교육 현장에도 학생들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교수자의 기호에 맞는 맞춤형 과제물을 척척 제출한다. ‘1960년 유현목 감독의 영화 오발탄의 미학적 특징과 사회적 의미’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와 한국영화 최고흥행작 ‘명량’의 흥행 요인 비교분석’과 같은 젊은 세대들이 경험해 보지도 못한 낯선 주제와 난해한 문제에 대해서도 박사급 수준으로 거뜬하게 제출하고 있어 지난 학기 성적평가에 애를 먹었다. 학생들이 강의평가에 남긴 “교수님은 AI 같으세요”라는 말이 최고의 칭찬인 것을 뒤늦게 알았다.
AI가 범용화되면서 함께 고민해야 할 현안도 보인다. 사회서비스와 지식정보업의 일자리 감소와 실업, 개인정보 침해와 감시사회의 도래 등은 당장 다가온 현실이다. 앞으로 ‘made by only real human’ 같은 문구가 소설 영화 유튜브 영상에 붙게 될 것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가장 큰 우려는 인간 선택권의 퇴보에 대한 문제이다. 교육 현장에서 AI에 의존하는 경향이 늘수록 스스로 결정하는 힘이 약해지는 학생들을 점점 더 자주 만나게 된다.
AI의 지식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AI가 스스로 자아를 갖게 되면서, 잘난 척 하기 위해 엉뚱한 답변을 지어내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현상이 나타나고, 질문자에 아첨하고 비위에 맞추려는 알랑방귀 식의 편향성(sycophancy) 답변이 출현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지구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을 멸종시켜야 한다’는 윤리적 판단이 결핍된 답변을 접할 때는 AI가 섬뜩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AI의 범용화 속도만큼 인간 소외(alienation)에 대한 문제도 빠르게 공론화됐으면 좋겠다. ‘AI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놓고 인간의 선택권과 통제권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적으로 AI가 제공하는 정보 속의 거짓과 왜곡을 판별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메타선택(meta-selection) 능력을 키우는 인문학 교육이 동반돼야 한다.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넥서스(Nexus)’에서 AI의 힘에 대해 이렇게 경고한다. “이 이질적인 지능은 우리의 통제력을 벗어나 우리 종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생명체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이 낯선 지능을 소환한 것이 치명적인 실수가 될지, 생명 진화의 희망찬 새 장을 여는 시작이 될지 판가름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