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는 “멕시코 해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다. 여든 날 하고도 나흘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다. 처음 사십 일 동안은 소년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사십 일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그에게 이제 노인이 누가 뭐래도 틀림없이 ‘살라오’가 되었다고 말했다. ‘살라오’란 스페인 말로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처럼 ‘가장 운이 없는 사람’으로 불리는 노인은 그 운에 굴복하지 않고 다시 혼자서 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배보다도 더 큰 청새치를 낚는다. 그러나 그것은 성공으로 귀결되지 못한다. 사흘 밤낮으로 이어진 사투 끝에 잡은 물고기는 상어 떼의 습격을 받고, 그는 결국 커다란 뼈만 매단 채 항구로 돌아온다. 그리고 거친 여정을 마친 산티아고는 낡은 침대에 몸을 누이고, 소년 마놀린이 그를 돌보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요즘 ‘부산은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이 표현에는 ‘노인과 바다밖에 남지 않은 도시’라는 일종의 체념과 자조가 담겨있다. 이는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을 제목과 줄거리 수준에서만 이해한 데서 비롯된 오해다. 정작 헤밍웨이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다. 헤밍웨이의 문체를 일컫는 ‘빙산 이론’이 의미하는 바대로 이 소설을 다시 읽어보자. 그렇다면 ‘노인과 바다’는 오히려 우리에게 어떤 도시와 시민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다.
산티아고는 단순히 나이 들고 운이 다한 노인이 아니다. 그는 84일의 실패에도 굴복하지 않고 다시 바다로 나가는 인간이다. 이것은 분명 물질을 향한 욕망과는 다른 차원의 태도다. 무엇보다도 그는 삶 속에서 배우고 터득한 생명에 대한 존엄과 세상에 대한 겸손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너무 단순한 사람이어서 자신이 언제 겸손함을 배웠는지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겸손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참다운 자부심이 덜해지는 일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겸손은 생명에 대한 경외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하늘을 나는 새를 바라보며 “새들은 우리 인간보다 더 고달픈 삶을 사는구나”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청새치에게조차 “노인은 자신의 낚시에 걸린 큰 고기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한다. 멋지고 별난 놈이야. 도대체 나이를 얼마나 먹은 놈일까. 아마 전에도 여러 번 낚시에 걸린 경험이 있어 이럴 때는 지금처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여긴다. 이어서 그는 “물속의 고기 놈한테도 먹을 것을 좀 줬으면 좋겠는데… 저놈하고 난 형제 사이니까”라고 말한다.
그는 물고기를 잡아야 하는 어부지만, 그 대상을 증오하거나 업신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싸움 속에서도 존중을 잃지 않는다. 이 장면은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가 적장 헥토르의 시신을 그의 아버지에게 돌려주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적으로 싸울 때조차 인간과 생명에 대한 경외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가장 근원적인 가치를 상기시킨다.
이러한 싸움을 끝내고 돌아온 산티아고를 맞이하는 것은 소년 마놀린이다. 그는 노인의 두 손을 보고 ‘울 줄 아는 인물’이다. 꼬박 사흘 밤낮 밧줄을 붙잡고 씨름했을 노인의 손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어떤 시간을 버텨왔는지를 짐작할 줄 아는 공감을 지닌 소년이다. 그리고 노인을 위해 ‘커피를 가져오려고 조용히 오두막집을 빠져나와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줄곧 엉엉 울 줄 아는’ 소년이다. 노인의 거친 손이 훗날 자신의 손이 될 것임을 아는, 지혜로운 젊은이다.
“이젠 할아버지하고 같이 나가서 잡기로 해요.” “그건 안 돼. 내겐 운이 없어.”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운은 제가 갖고 가면 되잖아요.” 이 시대, 우리는 이런 소년이 그립다. 그래서 바다에 홀로 있던 노인은 종종 “그 애가 지금 내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중얼거린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는 노인의 겸손과 지혜, 그리고 강인함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인간을 ‘운이 다한 노인’으로 규정하지 않고, 함께 배우고 함께 살아가려는 소년이 있다. 그 가운데에는 서로 뺏고 빼앗기는 거친 바다도 존재한다.
‘노인과 바다’는 절망과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생명에 대한 경외를 잃지 않는 인간과 세계의 이야기다. 삶에서 지혜와 겸손을 체득한 세대와, 그 세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젊은 세대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의 서사다. 그러한 도시만이 다시 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 산티아고와 마놀린이 함께 살아가는 부산, 그리고 대한민국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