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동맹인 미국과 영국이 중동 전쟁에 대한 시각 차이로 냉각된 관계가 이어지는 가운데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지난 2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을 국빈 방문했다. 영국 왕실은 국왕이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찰스 3세가 일종의 ‘외교 특사’의 성격을 띠고 미국을 찾은 것은 그만큼 동맹의 균열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 현지에서는 찰스 3세의 이번 국빈 방문을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간 정치적 긴장이 완화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찰스 3세는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하는 장면에서 신경전을 보이는가 하면, 미 의회 연설에서 ‘뼈 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지난 27일 백악관에서 마주한 찰스 3세와 트럼프 대통령은 악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악수한 손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자 찰스 3세도 다시 마주잡은 손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의 만남에서 악수를 할 때 손을 강하게 잡고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는 장면은 종종 포착된다. 일종의 기싸움인데, 찰스 3세도 지지않고 맞대응한 셈이다.
찰스 3세는 28일 워싱턴 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는 영국식 유머를 선 보였다. 영국 국왕의 의회 연설은 1991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이후 35년 만이다. 그는 영국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유명한 경구를 인용해 “우리는 요즘 미국과 정말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언어만 빼고 말이다”고 말했다. 관용적 의미로 미국과 영국이 같이 영어를 사용하지만 발음이나 억양 어휘가 달라 종종 의사소통에 오해가 생긴다는 의미다. 찰스 3세의 농담은 중동 전쟁을 둘러싼 미국과 영국의 갈등을 꼬집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의 중동 전쟁 불참에 대해 스타머 영국 총리를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다. 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도 유럽의 방위공동체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미국에 무임승차한다며 날을 세웠다.
농담으로 포문을 연 찰스 3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에 대해서도 견제구를 날렸다. 찰스 3세는 나토를 중심으로 한 서방 동맹의 가치를 역설하며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특히 9·11 테러 직후 나토가 미국에 대해 집단 방위 조항을 발동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우크라이나 방어에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윤정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