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묘사한 블랙홀 ‘가르강튀아’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킵 손의 중력 렌즈 효과 방정식을 실제 렌더링에 투사한 과학적 실재의 투영이다. 이 거대 질량의 실체는 단순히 빛을 삼키는 어둠이 아니다.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은 시공간을 휘게 만들어, 블랙홀 뒤편의 광륜을 관찰자의 정면으로 끌어올린다. 뒤쪽이 앞쪽으로 굴절되어 나타나는 이 경이로운 현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선 원근법적 세계관의 직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시각이 시공간의 압도적인 실재 앞에서 어떻게 해체되고 재구성되는지를 보게 한다. 이 현상을 보며 러시아의 성상화와 조선의 책거리 그림에 적용된 역원근법을 떠올린다. 멀리 있는 것을 작게 그리거나 지우는 대신 오히려 확장해 보이지 않는 뒤편을 기어이 화면 안으로 끄집어내는 이 독특한 화법은, 기술적 미숙함이 아니라 존재의 총체성을 회복하려는 치밀한 예술적 의도이며 시공간의 익숙한 좌표를 지우고 존재의 결을 재구성해 보이지 않는 너머를 보는 방식이다. 이런 의도는 인류의 비극 가운데 가장 무거운 질량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과 제노사이드, 그리고 삶을 짓누르는 경제적 결핍의 시기에 다시 선명해진다.
역원근법의 토대를 닦은 러시아 출신 종교철학자 파벨 플로렌스키는 삶 자체가 휘어진 빛이었다. 그는 러시아 혁명과 뒤이은 내전, 스탈린 체제의 가공할 만한 탄압 속에서 성스러움과 예술, 그리고 과학을 지키려 한 러시아의 다빈치였다. 그가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천착한 역원근법은 인간의 오만한 시선이 세상을 재단하는 선 원근법에 대한 신학적·철학적 저항이며, 대상의 실재를 온전히 담아내려는 영성적인 시도였다. 전쟁과 제노사이드는 인간을 거대한 중력처럼 짓누른다. 국가라는 거대 질량이 개인의 삶을 삼키고, 양민 학살이라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수많은 목숨을 지워버릴 때, 진실은 언제나 은폐된 뒤쪽에 머문다. 플로렌스키는 성상화의 역원근법을 통해 현상의 뒤편을 보라고 권한다. 소실점을 관찰자 내면으로 옮김으로써, 가려진 대상을 시야의 중심에 두는 것. 그것은 서로를 타자화하며 적대를 정당화하는 분절된 진영의 서사와 폭력이 지워버린 인간 존엄을 역설적으로 복원하려는 시도였다. 그에게 예술은 비극의 중력에 굴복하지 않고, 기어이 현상의 이면을 비추는 등불이었다.
조선 후기의 책거리 그림에서도 유사한 인문학적 온기를 읽을 수 있다. 책거리는 서구적 투시법을 받아들이면서도 의도적으로 역원근법을 혼용했다. 책장의 윗면과 옆면이 동시에 보이고, 뒤로 갈수록 넓어지는 사물의 모습은 기하학적 오류가 아닌, 대상에 대한 지극한 애정의 발로다. 당시 조선은 극심한 기근과 경제적 위기, 신분제의 동요라는 진통을 겪고 있었다. 물질적 풍요가 거세된 시대, 예술가들은 역원근법을 통해 사물의 모든 면을 한꺼번에 포착하고자 했다. 이는 소유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앎’의 갈망이자, 삶의 결핍을 예술적 풍요로 치유하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책거리 속 역원근법은 대상을 내 발밑에 두려는 권력의 시선이 아니라, 대상의 다면성을 복원해 숨겨진 뒤태까지 보듬으려는 다정하고 품격 있는 시선이다.
‘인터스텔라’의 블랙홀과 러시아의 성상화, 조선의 책거리는 시공간을 넘어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자아의 영토 안에 머무는 익숙한 풍경만을 허용하는가, 아니면 소외된 뒤편의 슬픔까지도 환대하는 존재론적 포용을 실천하고 있는가’. 빛이 꺾여 뒤쪽을 보여주는 현상은 물리학적으로는 시공간의 왜곡이지만, 인문학적으로는 이해의 확장이다.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전쟁의 포화와 제노사이드의 비극, 전 지구적 경제 위기라는 거대 중력의 영향에 휘말려 고통받고 있다.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가르강튀아의 빛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처절한 비극의 중력 속에서도 빛은 경로를 수정하며 끝내 존재를 증명해 낸다는 사실이다. 전쟁으로 지워진 이들의 뒷모습과 경제적 소외로 가려진 이들의 삶을 앞쪽으로 끌어올려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이 시대 예술이 수행해야 할 역원근법적 임무다. 선 원근법이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정렬시킨다면, 역원근법은 타자를 위해 중심을 옮기는 관계의 미학이다.
이제 직선의 오만을 거두고, 사랑과 환대의 중력으로, 굴절된 시각을 회복할 시간이다. 세상의 모든 뒤편은 사실, 소외의 그늘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 줄 손길을 갈구하는 존재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뒤편의 슬픔과 비극을 기어이 시야 안으로 초대하는 것은 구부러진 빛의 길 위에서 온전한 인간 존재를 마주하는 일일 것이다. 소실점 너머로 사라져 가던 것들을 향해 손 내미는 역원근법이라는, 시대를 건너온 미학적 유산은 전쟁과 증오의 중력에 빨려 들어가는 현대 문명을 향한 처절한 경고이자 마지막 구원의 손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