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울산에서 30대 가장과 미성년 자녀 4명이 숨진 채 발견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생활고와 육아의 어려움 등을 비관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해당 사건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중대한 아동 생명권을 침해한 전형적인 사례다. 동시에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위험 신호를 얼마나 촘촘히 살피고 있었는지 다시 돌아보게 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비극이 예고 없이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상을 감지한 담임교사가 두 차례나 신고를 했고 경찰과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현장 확인, 지자체의 복지 지원 안내,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통한 위기 징후 포착 등도 있었다. 분명 여러 위험신호가 있었지만 그 신호들이 하나의 보호 체계로 충분히 연결되지 못했다. 정보는 있었지만 통합적 판단은 부족했고 제도는 있었지만 현장의 위험을 막아내기에는 촘촘하지 못했다. 이번 사건은 위기 징후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발견된 신호가 실제 보호 조치로 이어지는 연결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흔히 부모의 사정과 가정의 어려움부터 떠올린다. 물론 복합적인 위기를 외면할 수는 없다. 실제로 세이브더칠드런 조사에 따르면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의 43.1%는 경제적 위기, 돌봄 부담, 정신건강 문제 등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아이의 관점’이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은 한 가정의 비극으로만 볼 수 없는 극단적 아동학대다. 아이들은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 고유한 생명과 권리를 지닌 존재다. 사회가 먼저 살펴야 할 대상은 가해의 사정이 아니라 보호받지 못한 아이의 삶과 안전이다.
세이브더칠드런 자료를 보면 지난 10년간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으로 사망하거나 중대한 피해를 입은 아동은 최소 151명에 이른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자녀 살해 후 자살이 특수한 유형의 사건에 대한 법적·제도적 대응은 여전히 미흡하다. 현행 법체계는 반복적 학대의 연속성이 확인돼야 적용이 가능한 경우가 많아 이번과 같은 사건의 특수성을 충분히 포착하고 대응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가해자가 사망하면 기록이 충분히 남지 않는 경우가 많고 기록의 공백은 결국 예방의 공백으로 이어진다. 기록되지 않는 죽음은 반복된다.
이제는 보다 세심한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을 별도의 위험군으로 관리하고 아동학대 관점에서 통계와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비속살해죄 도입 같은 법적 보완과 함께 복합 위험가정을 조기에 발견하고 지원하는 보편적 가정방문서비스, 관계기관 간 정보 공유, 아동사망검토제도 같은 예방 중심 시스템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아동의 생명과 안전은 개별 가정에만 맡겨둘 수 없는 공적 책임의 영역이다. 더 늦기 전에 제도의 빈틈을 메우고 이를 한 가정의 불행이 아닌 중대한 아동학대이자 사회적 문제로 함께 인식할 때 비로소 다음 아이의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이제 모두가 나서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