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자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예술도 피어난다. 겨울 동안 모색하고 도전했던 예술인들이 봄이 되자 그동안 준비한 작업을 하나둘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3, 4월이 되면 전시와 공연이 쏟아진다. 예술을 누리는 입장에선 그야말로 ‘골라보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시기다. 봄이 더욱 풍성한 이유다.
지난달부터 많은 예술 현장을 다니며 특히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치열하게 작업하는 예술가들의 ‘연대’가 눈길을 끈 현장들이었다.
지난달 26일 부산 서구 암남동 알로이시오기지1968 #3에 문을 연 ‘아트센터 1968’은 작가들이 연대해 예술기지를 일군 곳이다. 지역 중견작가 8명이 알로이시오기지1968에 레지던시 공간 ‘A.A예술기지’를 운영하며 전시공간 아트센터 1968을 열었다(국제신문 지난달 27일 자 14면 등 보도). 8명의 작가는 직접 공간을 가꾸고 프로그램을 기획했으며, 아트센터 1968 개관전에 작가 90명을 초대하는 아주 드물고 귀한 자리도 만들었다. 이미 예술적 성취가 뚜렷하고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8명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A.A예술기지와 아트센터 1968을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문화공간이 부족한 서부산에서 예술을 향유하고 싶어서’ ‘부산을 대표하는 작업(작가)을 보여주고 싶어서’ ‘알로이시오1968에 예술을 나누고 싶어서’ 등 모든 이유가 의미 있었지만 그중 ‘진정한 레지던시의 의미를 살린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가 특히 흥미로웠다. 부산에 이미 수많은 예술 레지던시 공간이 존재하고, 특히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른 중견작가에게 레지던시가 얼마나 필요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에 대한 작가들의 대답은 의외였다. “홀로 작업하는 일은 외롭고 고된 수행과 같다. 그럴 때 누군가 옆에서 불을 켜고 작업을 하는 것만 느껴도 ‘나만 외로운 것이 아니구나’라고 안도하면서 동시에 위로받는다.” 작업 경력이 쌓일수록 이런 고민과 외로움은 더 커진다고 한다. 중견 작가의 위치가 점점 애매해지는 미술계에서 공통의 고민을 가지고 현실과 사투 중인 이들이 모여 격려하고 또 다른 자극을 받는 교류의 장, 그런 레지던시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 그것이 곧 연대가 아닐까.
지난 1월 개관전을 열었고 벌써 두 번째 전시를 시작한 갤러리 ‘space bv’(부산 금정구 두구동)도 ‘연대’를 꿈꾸는, 눈길이 가는 공간이었다. space bv는 20년간 설치작가로 활동하며 국내외를 누비는 이정윤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을 전시 공간으로 바꾼 곳이다. 이정윤 작가는 직접 기획자로 나서 마음에 두고 있던 작가의 전시도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정윤 작가가 갤러리의 운영 방향을 소개하며 이야기한 것 중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오래 작업하면서 좋은 작가를 많이 알게 됐고, 그들의 작업이 널리 소개되길 바라는 마음도 커졌다. 특히 40~60대 중견 작가의 작업을 내어 보일 기회나 공간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중심에 두고 전시를 기획하려 한다.” 좋은 작가에게 공간을 내어주며 그들의 작업을 지지하겠다는 또 다른 작가의 마음. 그것이 곧 연대일 것이다.
작가의 마음은 작가가 가장 잘 알겠지만, 그렇다고 팍팍한 현실에서 선뜻 ‘연대의 장’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작가들이 주도한 연대의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부산의 예술 온기가 지속되는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부산시의 올해 부산문화예술지원사업 예산은 95억, 내년이면 1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전국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액수이다. 그럼에도 부산의 예술인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렇다면 전국구로 이름난 예술공동체 ‘또따또가’의 사례처럼 예술인이 서로 기댈 수 있는 연대의 장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꼭 공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같은 문제를 겪고 좌절하는 이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는 연대의 기회가 좀 더 자주 만들어진다면 예술이 힘들어도 포기하는 이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김현주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