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시행된 ‘해상풍력 특별법’을 계기로 사업 절차 간소화와 인허가 기간 단축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다소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제도는 빨라졌지만, 사업은 여전히 더디다는 것이다. 이유는 뭘까? 업계에서는 해상풍력 사업의 진짜 병목을 ‘인허가’가 아닌 ‘품질’에서 찾는다. 여기서 말하는 품질은 단순한 시공 품질이 아니라, 사업 전반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기초 정보의 신뢰도를 의미한다. 특히 해저 지형과 지반, 매설 환경에 대한 조사 데이터의 품질이 핵심이다.
해상풍력 특별법은 사업 초기 단계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인허가 절차를 통합하고 행정 부담을 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인허가 이후 시공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로 사업 일정이 지연되거나 설계 변경이 발생하는 사례가 반복된다. 예를 들어, 사전 조사에서 연약지반으로 판단된 구간이 실제 시공 단계에서 암반으로 확인되거나, 케이블 매설이 가능한 것으로 계획된 구간에서 예상보다 얕은 매설 심도만 확보되는 경우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오차가 아니라, 시공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 수준의 변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 공통점은 하나다. 사업 초기 단계에서 확보된 정보의 품질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상풍력 사업은 인허가가 끝났다고 해서 바로 실행되는 사업이 아니다. 조사 설계 시공 운영 전 과정이 서로 연결돼 있으며, 그 출발점은 현장 데이터다. 특히 해양 지구물리탐사 분야에서는 탐사 해상도, 데이터 취득 방식, 처리 및 해석 방법에 따라 결과의 신뢰도가 크게 달라진다. 동일한 해역이라도 어떤 기준과 방법으로 조사했는지에 따라 설계에 활용 가능한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사업의 속도와 안정성을 결정하는 것은 행정이 아니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기반으로 시작했는가’다.
현재 글로벌 해상풍력 시장에서는 조사 및 데이터 품질과 관련해 DNV, ISO, ASTM 등 다양한 국제 표준이 활용된다. 다만 실제 프로젝트에서는 이런 국제 기준이 ‘최소 기준선’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주요 개발사들은 여기에 더해 탐사 해상도, 데이터 간격 및 커버리지, 처리 및 해석 방식 등에 대해 자체 기준을 추가로 설정한다. 즉, 국제 기준+개발사 기준이 결합된 구조로 사업이 운영된다. 이런 구조는 이미 해외에서는 일반화돼 있으며, 조사 단계에서 확보되는 데이터의 품질이 이후 설계 및 시공 리스크를 좌우한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반면 국내 상황은 다르다. 명확한 국가 기준이 부재한 상태에서, 해외 개발사들이 각자 기준을 적용하며 사업을 진행한다. 이로 인해 프로젝트마다 요구 수준이 달라지고, 조사 범위와 방법, 해석 기준까지 일관성이 부족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러한 기준의 불일치는 단순한 기술적 차이를 넘어 조사 범위의 과소 또는 과잉 설정, 설계 기준의 혼선, 시공 단계에서의 재검토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이는 국내 기업이 부담하면서 과다한 비용으로 작용, 경쟁력 저하와 일정 지연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해상풍력 특별법은 행정 절차의 병목을 줄이는 데에는 분명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품질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또 다른 병목이 발생한다. 사업은 시작돼도 설계 단계에서 멈추고 시공 단계에서 다시 되돌아가는 구조다. ‘숨겨진 병목’은 현장에서는 가장 큰 리스크로 작용한다.
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이미 존재하는 국제 기준과 글로벌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 실정에 맞는 품질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 기업들은 그 기준에 맞게 준비하고 투자하면 해외 기업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제 표준을 기반으로 하고, 주요 개발사 기준을 참고하며, 국내 해역 특성과 산업 구조를 반영한 현실적인 기준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국내 기준을 정립하기 위한 공공기관이 중심이 된, 기업체 학계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구성체를 만들고, 다양한 분야에서 참여하는 OPEN 채널을 구성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이 기준이 마련돼야 사업 초기 단계에서 요구 수준이 명확해지고, 조사와 설계, 시공 간의 연결성이 확보된다. 결국 인허가 단축의 효과도 이때 비로소 현실화된다.
해상풍력 산업은 이제 확대 단계를 넘어, 안정적인 실행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정책의 방향도 ‘얼마나 빨리 허가할 것인가’에서 ‘얼마나 실패 없이 추진할 것인가’로 이동해야 한다. 해상풍력 특별법이 길을 열었다면, 그 길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기준’이다. 해상풍력 특별법으로 제도적 속도는 확보됐다. 이제 그 속도를 실제 사업의 성과로 이어가기 위해 명확한 기준을 서둘러 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