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여파로 비닐 원료인 나프타가 수급에 차질을 빚자 뜻하지 않은 종량제 봉투 사재기가 벌어졌다. 봉투가 곧 생산 중단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과잉 대응을 부른 것이다. 동네 슈퍼마켓과 대형 마트에 쌓여 있던 종량제 봉투는 대량 구입에 나선 시민에 의해 동이 나는가 하면 입고 시기 문의도 빗발친다고 한다. 정부와 부산시가 재고분이 충분하다고 강조하는데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이런 우려를 마냥 근거 없다고 치부할 수도 없다. 지난달 28일 시작된 전쟁이 한달째 끝날 기미가 없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원유 수송 차질과 유가 인상 여파가 실제로 산업 현장 전반에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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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이란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 파르스에서 불꽃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이 막히면 그 자체도 문제지만 이를 원료로 하는 다른 부자재 생산도 연쇄적으로 막힌다. 원유가 없으면 그 부산물인 나프타, 나프타가 없으면 에틸렌을 못 만드는 식이다. 에틸렌은 선박절단(조선) 부품·냉각수(자동차) 포장재(식품) 창호·전선피복(건설) 등에 쓰이는 원료다. 이미 국내 에틸렌 생산기업은 공급 불가항력을 선언하고 일부 공장 가동을 멈췄다. LNG 역시 수입이 중단되면 도시가스 공급을 비롯해 부산물인 헬륨 생산 등에 적신호가 켜진다. 한국 LNG 수입량의 15%를 차지하는 카타르가 생산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부산의 고무와 페인트 업체들은 원료 조달 어려움을 호소하며 공장을 세워야 할지 모른다고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원유와 LNG가 제대로 조달되지 않거나 가격이 폭등하면 국내 실물경제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가늠하기 힘들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해협 봉쇄가 3주 안에 끝나면 그나마 한국 전산업 평균 생산비가 4.21% 상승하는데 그치지만, 그 이상 길어지면 석탄 및 석유제품 생산비는 60% 이상, 3개월 이상 지속할 때는 80% 이상까지 치솟는다. 전쟁은 이미 한달을 넘어 그 이상으로 치닫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협상에 진전이 있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지상군 투입을 준비하는 등 전황을 더 어지럽게 만들고, 무엇보다 이란이 확실한 반대급부 없이는 전쟁을 끝내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4월 위기설’의 현실화 가능성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정부도 총력대응 태세를 취하긴 했다. 공공부문 차량 5부제를 실시하고 산업 원료 수출분을 내수로 돌리는 등 대책을 마련 중이다. 조만간 25조 원 안팎의 추가경정예산도 푼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사태가 단기간에 마무리 될 성질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쟁이 당장 끝난다 해도 가동이 중단됐거나 파괴된 에너지 생산시설을 복구하는데 수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정부가 “대체경로와 비축분이 있어 당분간 안심해도 된다”며 국민을 진정시키는 한편으로 장기 대비책이 충분하고 분명해야 한다. 나프타 사태는 닥쳐올 위기의 일단일 뿐이다. 국민도 불필요한 불안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는 경각심을 갖고 차분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