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이 4주째에 접어들었다. 개전 초기 군사 시설을 타격하던 것을 벗어나 공격 대상이 에너지 시설로 확대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가 전쟁과 종전을 좌우하는 중요 변수로 부상한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통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 타격을 줌으로써 전황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이란의 벼랑 끝 전술이 효과를 발휘했다.
이란의 ‘에너지 인질극’에 미국은 최후통첩을 날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아무런 위협 없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는다면 정확히 48시간이 지나는 시점부터 가장 큰 규모 발전소를 시작으로 이란 전역의 전력 시설을 타격해 소멸시키겠다”고 했다.
발전소 시설 폭격은 에너지 공급망은 안전하게 보존하면서도 이란의 전쟁 의지를 꺾을 수 있는 수단으로 풀이된다. 이란의 자금줄인 원유 생산 시설을 직접 타격하면 국제유가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을 우려가 크다. 이 때문에 이란 내부에만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발전소를 공격하려는 의도다. 앞서 미국은 이란의 원유 수출 기지인 하르그 섬 공격 때도 원유 시설은 건드리지 않고 군사시설만 폭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우려하는 전쟁 시나리오였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이제 종전의 열쇠가 됐다. 이란이 해협 봉쇄를 풀면 미국이 공격을 멈추고 종전 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카타르의 중재로 물 밑에서 협상이 진행된다는 보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 개방은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이 종전 협상 테이블에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될 경우, 전쟁은 장기화에 들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이 발전소 시설 타격을 실행하면 이란의 미사일 반격도 비례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란은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파르스가 공격받자 즉시 카타르의 가스 생산 시설에 대한 보복 공격에 나선 바 있다. 인근 걸프 국가의 원유 생산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 공격이 이뤄지면 전쟁은 중동 전역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중동에 접근 중인 미 제31해병원정대와 육군 제82공수사단의 상륙과 지상전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
전쟁이 길어지면 세계 경제는 거대한 오일 쇼크에 직면한다. 에너지 전쟁은 우리의 에너지 안보에 큰 과제를 남겼다.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나라는 앞으로도 발생할 분쟁, 특히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 고조에도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윤정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