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사회에서 음악은 혼자 감상하는 예술이기 이전에 함께 나누는 문화였다. 왕실의 제례와 국가 의식에서 연주되던 궁중음악은 공동체의 질서와 정신을 담고 있었고, 마을에서는 농악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생활의 음악으로 이어졌다. 음악은 언제나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존재해 왔다.
 |
| 필자의 리사이틀을 관람한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은퇴 연주자와 그의 배우자가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 |
필자는 최근 미국 뉴멕시코주립대(NMSU)에서 3주간 게스트 아티스트로 머무르며 리사이틀과 CMS 학회 연주를 진행했다. 공연이 열린 Atkinson Hall에는 지역 주민들이 자리를 메웠고, 공연 후 로비에서는 교수들과 자연스레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밤이 되면 대학의 문은 오히려 더 낮아진다. 고령층과 학생, 음악 교사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로 구성된 시민 오케스트라와 마을 밴드 활동이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연습실은 지역 연주자들에게 열려 있고, 교수들은 이들을 지도하며 함께 음악을 나눈다. 처음 악기를 배우는 사람부터 오랜 공백 이후 다시 음악을 시작한 사람까지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음악 커뮤니티였다. 내 리사이틀을 관람한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은퇴 연주자와 그의 배우자 역시 단원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우연한 사례로 보기 어렵다. 뉴멕시코주립대는 제도적으로 대학이 공간을 개방하고 공동체를 잇는 공공적 역할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대학(land-grant university)이다. 이러한 구조가 우리나라에 그대로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학이 공동체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문화예술 활동은 은퇴 이후의 삶을 공동체와 다시 잇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 전통사회의 공동체 문화를 떠올리게 된다. 조선시대의 서원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학문과 제향, 그리고 지역 교류가 어우러진 학술·문화 공동체 공간이었다. 이러한 가치가 인정되어 한국의 서원은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서원에서는 선비들이 모여 학문과 의례를 함께하며 공동체의 질서와 가치를 공유했고, 그 안에서 이루어진 음악과 풍류 역시 개인의 기예를 넘어 공동체적 교양과 관계를 나누는 문화였다. 민간에서도 공동체 예술은 삶 속에서 이어졌다. 농악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며 관계를 형성하고 결속을 다지는 공동체의 예술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으며, 이러한 가치가 인정되어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결국 조선시대의 학문 공동체와 민간의 예술 공동체는 형태는 달랐지만 교육과 교류, 그리고 공동체 결속이라는 공통된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서로 다른 방식의 공동체 문화가 같은 가치 위에서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문화적 자산이다.
오늘날 공동체 문화는 약화되었지만, 은퇴 이후의 삶을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가 찾는 공동체의 모습은 전통 속에 존재했던 구조를 오늘의 방식으로 다시 풀어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예술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필요하다. 대학이 문턱을 낮추고 지역사회와 연결될 때, 문화는 다시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