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내가 아까 기분 나빴다고 했잖아.”
남자: “응, 미안.”
여자: “뭐가 미안한데?”
우리가 남녀 간의 다툼을 이야기할 때 우스갯소리로 자주 드는 사례이다. 이 대화에서 다그치는 여자 편을 든다면 남자의 대답에 진정성이나 감정 전달이 잘 안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럴 때 남자의 영혼 없는 대답 때문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요즘 AI가 대답하는 것을 보면 이 느낌이 든다. 오늘날 AI는 많은 문제를 빠르게 해결해 주는 도구로 자리잡았다. 검색 한 번이면 답을 얻을 수 있고, 복잡한 계산이나 분석도 순식간에 처리한다. 그러나 이제는 글이나 그림을 보면 바로 AI가 쓰고 그린 것 같은 ‘AI스러운’ 분위기를 금방 알 수 있다. 학생이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처음에는 아주 그럴싸하게 유창한 단어를 활용해서 잘 적은 것 같아 보이지만, 내용을 차근히 읽어보면 본인의 주장이나 핵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AI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 이는 AI가 나의 말에 “맞아요, 그렇죠” 식으로 거의 그대로 동의하는 방식으로 말을 잘하기 때문이다. AI가 사용자의 말에 비판적 시각이나 새로운 관점은 제시하지 않고, 계속 같은 톤으로 맞장구를 친다. 실제 주요 대형 언어 모델의 응답 패턴을 비교한 실험연구에서 AI가 사용자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강화하는 ‘아부형 응답’ 경향을 보임을 밝혔다. 이런 대화는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동시에 깊은 사고나 토론을 촉발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면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현상이 일어난다. 이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으면 그들의 사고방식이 돌고 돌면서 서로를 도와줘 신념과 믿음이 증폭되고 강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가 SNS나 유튜브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 피드가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고, 유튜브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영상만 추천해준다. 그러다 보면 마치 세상 전체가 나와 동일한 의견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AI가 사용자의 말에 지속적으로 동조할 때, 대화가 친밀하고 개인적으로 느껴져서 AI의 답변에 사용자의 객관적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 이러다 보면 스스로 판단하고 사고하는 과정을 AI에게 전적으로 맡기게 되는 생각의 외주화 상태가 된다. 다른 관점을 고려하거나 의심하는 능력, 즉 비판적 사고가 약화된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은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인간의 지적 탐구와 토론의 가치를 상징하는 걸작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과거의 철학자들을 그린 것이 아니며, 지식은 혼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토론을 통해 확장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라파엘로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토론이야말로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교육현장에서는 단순히 ‘정답을 아는 것’보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 핵심이 바로 토론 교육이다.
토론은 단순한 말하기 훈련을 넘어, 학생들이 서로 다른 관점으로 부딪히며 논리적 근거를 세우고 사고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표정, 제스처, 시선 맞추기 같은 비언어적 표현 훈련부터 시작해 서로 다른 관점을 논쟁하며 논리적 근거를 세우는 과정은 학생들에게 깊은 사고력을 길러준다. 또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존중하는 태도는 공감과 이해 능력을 키워 사회적 성숙을 이끌어내며, 충돌과 논쟁 속에서 창의적 사고가 확장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탄생시킬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대화와 토론에는 감정 가치 맥락을 담아내야 한다. 기계가 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영역이다. 코넬 테크의 모어 나아만 교수는 인간으로서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신호들을 강조한 바 있다. 작은 실수나 개인적 습관, ‘내가 직접 썼다’는 노력이 담긴 흔적, 그리고 유머나 역량을 보여주는 표현들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인간스러운’ 신호들이 더욱 기다려지는 시대가 된 듯하다.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대화와 토론은 감정과 가치, 그리고 맥락을 담아내며 교육의 중심에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