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2016년 이후 10년 만인 9일 스타트업 인핸스 AI 에이전트와 대국을 펼쳤다. 이 9단이 음성 명령을 내리면 다양한 바둑 모델이 생성, 대결하는 방식이었다. 구글 딥마인드 AI 알파고와 대국을 벌인 10년 전 이날을 기념하는 행사다. 과거 인간과 대결했던 AI가 이제는 인간 의도를 수행하는 ‘협업 파트너’로 진화했음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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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9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AI 스타트업 인핸스가 주최한 ‘에이전틱 AI 상용화 글로벌 캠페인’에 참석, 인핸스의 AI 에이전트와 실시간 협업하여 만든 바둑 프로그램을 시연하며 AI 에이전트의 훈수에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
2016년 3월 9일 대국에서 많은 이들은 세계 최상급 프로기사인 이 9단이 이길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알파고가 4승1패로 승리, 큰 충격을 줬다. 알파고는 인간이라면 두지 못했을 생경한 수를 두며 이 9단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축적된 데이터를 확보한 AI의 위력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2016년 대국 뒤 이 9단은 “제가 당연히 이길 것으로 봤다”며 “승부 호흡도 없고 고민도 하지 않고 수를 두는 모습을 보니 벽에다 테니스공을 치는 느낌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10주년 기념 이벤트가 AI와의 재대결이 아닌 협력으로 열린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가 2019년 은퇴를 결심한 중요 배경에 알파고와의 승부가 있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AI와 바둑 대결을 벌인다면 이길 사람이 있을지 의문스럽다.
‘알파고 쇼크’는 세상을 바꿀 AI시대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구글은 2017년 트랜스포머를 공개했다. 이는 AI가 막대한 양의 정보를 병렬로 연산해 맥락을 파악하고 이후 정보값을 예측하는 거대언어모델(LLM)의 토대가 된 기술이다. 오픈 AI는 이 기술을 활용해 2022년 챗봇 챗GPT를 내놓아 돌풍을 일으켰다. 챗GPT 탄생은 우리 일상과 업무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문서요약 보고서 작성 등 간단한 업무는 물론 기업 경영·생산, 개인 자산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보와 전략을 제공하는 수단이 됐다. 여러 궁금증을 챗GPT나 구글 챗봇 제미나이로 해결하는 사람이 많다. 대표적으로 아픈 증상을 검색해 병명이나 적합한 병원을 찾는 일이다. 물론 이런 정보를 맹신해선 안 되고 전문의와 상담해야 한다.
AI 기업간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지난달 3일 뉴욕 증시는 기술주 중심으로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앤스로픽이 출시한 클로드 코워크가 준 공포 여파였다. AI가 구글 드라이브, 지메일 등을 직접 읽고 쓰며 계약서를 검토하는 도구다. 사용자가 개별 소프트웨어를 열 필요가 없다. AI발 소프트웨어 산업 위기를 의미하는 클로드 코워드(claude coward)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코워드는 겁쟁이라는 뜻이다.
‘알파고 쇼크’ 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앤비디아 등 미국 기업들은 엎치락뒤치락하며 AI 신기술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중국은 이들을 맹추격하고 있다. 중국 기업 딥시크는 지난해 1월 챗GPT 개발 비용의 10분의 1로 고성능 AI 추론 모델을 내놓아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올해는 텍스트는 물론 이미지 비디오 오디오까지 처리하는 차세대 모델 V4 출시를 예고했다. 중국은 이제 자국 AI를 바탕으로 휴머노이드 같은 피지컬AI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2016년 ‘알파고 쇼크’를 목도한 대한민국 AI 수준은 나아진 게 없어 씁쓸하다. 알파고 대국 기간 중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삼성전자와 LG전자 연구 센터를 찾아 AI 연구 상황을 점검했다. AI 기술 개발 지원 약속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이 AI 중심 국가가 될 것이라는 당시 전망이 무색한 지금이다. AI 산업 성장을 위해 정부가 규제를 허물어 신산업이 싹틀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는 언론 지적 역시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천문학적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계획을 밝혔고 착착 실행하고 있다. 그렇다고 시대적인 대세이자 미래 산업인 AI를 포기할 순 없다. 이재명 정부가 AI 3대 강국 도약을 국정과제로 삼은 점은 다행스럽다. 올해 AI 관련 예산으로 역대 최대인 9조9000억 원을 편성했다. 차근차근 준비해 피지컬AI 등 차세대 기술 선점과 AI 핵심인재 확보로 글로벌 AI이니셔티브를 주도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해야 하겠다.
AI 산업은 예산만으로는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 AI 관련 규제를 최소화하고 전력을 확보하는 정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기업들의 AI기술 개발, 신생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창업 투자 시스템 확충도 시급하다.
‘알파고 쇼크’ 이후 바둑계는 두려움에 떨기보단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16년 전에는 프로기사들이 기보를 함께 연구하며 실력을 쌓았다. 지금은 혼자 노트북을 켜놓고 AI 프로그램이 파란색으로 정답을 알려주는 ‘블루스폿’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거대한 변화에 잘 대응하고 체화해 실력을 키우는 모습이다. 절박함을 가지고 변화를 꾀한 바둑계처럼 정부와 기업이 똘똘 뭉쳐 AI와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이은정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