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를 탐한 대가는 혹독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지난달 28일 오전 9시45분(현지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했다. 이슬람 율법을 앞세운 철권통치가 37년 만에 막을 내린 순간. 이날 이례적이고 광범위한 정밀타격에 하메네이 직계 가족인 딸과 사위 며느리 손자는 물론 이란 고위관리들이 여럿 숨졌다. 사망 10일 전까지 “세계 최강의 군대라 할지라도 단 한 번의 치명적인 타격으로 주저앉게 될 날이 올 것”이라며 미국의 핵포기 압박에 공개적으로 저항했던 하메네이. 그의 말은 부메랑이 되어 그를 겨눴다.
이란 핵개발이 미국의 지원으로 시작됐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1957년 친미 이란 왕정의 국왕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는 미국 지원으로 ‘평화를 위한 원자력’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1967년 수도 테헤란에 연구용 원자로가 설치됐다. 이란 과학자들은 미국에서 핵기술을 배웠다. 미국은 고농축 우라늄 핵연료까지 공급한다. 원자력발전소 건설로 전력을 해결하고 자국서 생산되는 석유는 수출해 부국을 꿈꿨던 친미 이란 왕정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 하지만 두 나라의 허니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상황은 뒤집혔다. 혁명을 이끈 루홀라 호메이니는 친미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공화국을 세웠다. 핵 프로그램은 중단됐다.
이후 두 나라 관계는 악화일로. 이란 혁명 직후 미국으로 망명한 팔레비 국왕의 송환을 요구하며 미 대사관을 점령한 444일간의 외교관 인질사태로 외교관계는 단절된다. 미국은 대이란 경제 제재와 자산 동결로 이란 국민의 반미감정을 고조시켰다. 1980년 이란-이라크전쟁 발발과 미국의 사담 후세인 정권 지원, 이라크의 화학무기로 인한 이란 군인과 민간인의 희생은 반미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이란은 스스로를 지켜낼 강력한 핵억제력이 필요했고 핵개발을 다시 시작했다. 러시아와 북한과도 손잡았다. 2002년 비밀 핵시설이 공개되면서 이란은 요주의 국가가 된다. 2015년 이란과 세계 강대국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체결했다. 핵 활동 제한 대신 경제 제재를 풀어주는 타협이었다. 그러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하면서 균형은 깨졌다. 제재는 재개됐고 핵 갈등도 되살아났다. 제2, 제3의 이란은 또 등장할 것이다.
“인류가 전쟁을 끝장내지 않는다면 전쟁이 인류를 끝장낼 것이다.” 핵무기 개발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아인슈타인의 경고가 섬뜩하다.
임훈 독자여론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