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부산, 흐름의 도시에서 관계의 도시로

강동진 경성대 교수

  • 강동진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6-03-05 18:45:47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우리나라 최초의 개항도시 부산은 ‘글로벌’을 앞세울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춘 도시다. 부산이 주창하고 있는 ‘글로벌 허브도시(이하 글로벌 도시)’ 개념은 매우 옳고, 또 부산과 찰떡같이 어울린다. 앞으로 수십 년간 끌고 가야 할 부산 브랜딩의 핵심 소재임에 틀림없다. 사전적 의미로 글로벌 도시는 ‘세계의 경제·정치·문화·지식 네트워크의 핵심 노드(node)로 기능하는 도시’로 정의된다. 다만 모든 영역에서 최고가 될 필요는 없다. AI에게 전 세계의 글로벌 도시가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네 도시를 꼽는다. 뉴욕(금융·미디어·국제기구 중심), 런던(국제 금융·법률·외교 중심), 도쿄(동아시아 경제·기술 허브), 싱가포르(글로벌 항만·물류·금융 허브). 그리고 이 도시들의 공통점으로 “인구 규모보다 해당 분야와 관련된 국제 네트워크에서의 영향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계적인 사회과학자이자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스페인의 마누엘 카스텔스는 글로벌 도시를 ‘흐름의 공간(space of flows)’으로 설명했다. 조선 시대 초량왜관이 있던 부산은 왜-한양-중국 간 은 거래의 중계무역지였고 조선통신사의 핵심 기착점이었다. 20세기에는 일제의 침략 목적 아래 태평양과 만주 대륙을 잇는 연결점이었으며, 한국전쟁기에는 피란수도에 연루된 국제협력과 구호 역사의 거점이었다. 오늘의 부산은 국제무역과 해상물류, 국제 네트워크 기반의 영화산업이 집적된 도시다. 부산은 분명 ‘흐름의 공간’이다. 다만 그 흐름을 확실하게 붙잡거나 정교하게 내면화시키질 못하고 있다. 흐름의 기회를 그냥 통과만 시키며, 잠시 잠시 이벤트를 통한 구호와 환상에 머문 채 재생산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AI가 꼽은 네 도시를 보더라도 글로벌의 주제는 각 도시의 역사, 사회적 속성, 지정학적 조건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진정한 글로벌은 흉내와 카피가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글로벌 도시를 외치면서 외연의 규모나 바깥세상을 의식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반드시 ‘남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특별함은 ‘글로벌의 올곧은 시선’과 연결된다. 글로벌의 함정은 글로벌을 외치다 그만 지역과 시민의 삶을 지우는 것이다. 허상과 숫자를 앞세운 글로벌이 때때로 지역의 내면을 도외시하거나 비워버리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글로벌을 주장하면 할수록 지역과 시민이 더 또렷하게 드러나야 한다. 어쩌면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다.

부산은 분명 흐름의 도시였다. 부산포가 열린 15세기 이래 지금까지 부산은 끊임없이 외부 세계와 만나 왔다. 그러나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흐름은 부산의 힘으로 축적되고 있는가. 글로벌의 추진 전략과 개발 정책이 보통 시민을 위한 것인가. 글로벌 해양을 위한 정책은 지역 청년의 삶과 연결될 수 있는가. 무수한 국제행사와 이벤트가 도시의 지속적 역량으로 남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솔직할 수 있고 또 정확히 부산을 직시할 수 있다면, 부산의 글로벌에 큰 변화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더 큰 규모를 향한 경쟁이나 자본 집중만으로는 답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부산이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개항 150년을 지나고 있는 부산에 가장 필요한 것은 글로벌이라는 수식어 자체가 아니라,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일지 모른다. 해양을 통해 스쳐 가는 세계 흐름을 지역의 기억과 정체성으로 재해석하여 다시 세계로 발신하는 능력, 전쟁과 피란의 기억을 평화와 인류애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상상력, 물류산업항을 시민과 문화의 항구로 재구성하는 창의성 등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런 고민의 결과가 부산만이 가질 수 있는 글로벌의 주제이지 않을까 싶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첫째, ‘해양 네트워크의 시민화’다. 항만과 물류가 도시의 외곽 산업으로 머무는 것이 아닌, 북항과 원도심, 산업과 문화, 일자리와 생활권이 연결되는 역동적인 구조로 재편되어야 한다. 해양 글로벌 도시는 물동량의 규모가 아니라 시민 삶 속에서 체감될 때 비로소 힘을 갖기 때문이다. 둘째, ‘기억 자산의 세계화’다. 피란수도의 평화와 인류애에 대한 기억, 국제 협력의 역사, 부산국제영화제가 축적한 문화 네트워크 등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상시적 글로벌 플랫폼으로 제도화하고 또 발전시켜야 한다. 부산의 정체성은 피란과 연대의 경험 속에서 형성되어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신해양 산업과 다음 세대와의 연결’이다. 북극항로, 해양에너지, 스마트 물류와 같은 담론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역의 대학과 연구기관, 청년 일자리 생태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글로벌 전략이 지역의 미래 세대와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허상에 가깝다.

부산은 역사적으로 흐름을 통과시킨 도시였다. 이제는 그 흐름을 축적하고 설계하는 도시로 전환해야 한다. 부산의 과제는 글로벌 도시라는 이름을 얻는 일이 아니라, 세계와 맺는 관계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흐름을 통과시키는 항구에서, 관계를 설계하는 항구로’. 이 문장이 개항 200년을 향해 나아갈 부산의 새로운 선언이 되어야 한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올해 임시·일용근로자 31년來 최소…40세 이상에 감소 집중
  2. 2부산항 인근에 머물고 있는 ‘부캉이’ 이모티콘도 나왔다
  3. 3HD현대중공업 기본급 12만 원 인상 골자 올해 임단협 2차 잠정합의안 마련
  4. 4‘부캉이’ 수로 떠난 날 북항 기름 유출 원인은 유조선
  5. 5CNN,“서울이 뉴욕이면 부산은 LA”…부산 조명
  6. 6[속보]‘부캉이’ 이틀 연속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서 관측
  7. 7태풍 ‘참피’ 영향 부산 이틀 동안 112㎜ 비…주택 담장 무너져
  8. 8‘운명의 일주일’… 가덕도신공항 난제 풀 대책 나올까
  9. 9부산에서 광저우·샤먼으로 가는 직항 하늘길 처음 열렸다
  10. 10중학생이 소화기로 진화 시도…부산 스터디카페서 불
  1. 1[속보] 한동훈 “오세훈 무죄 판결에 참 다행스럽다 생각”
  2. 2‘YS 오른팔’ 故최형우 빈소 조문한 김민석 “여야 넘어 성찰”
  3. 3법무장관 후보 검찰출신 박균택·양부남 2인 압축
  4. 4김정은, 중국 6·25참전기념관서 “조중친선 영원히 계승”
  5. 5김정은 방중, 북중혈맹 과시, 경제협력 확대에 무게
  6. 6법무장관 박균택·양부남 유력, 野 "李 죄 지우기 인선이냐"(종합)
  7. 7[2026 국감 브리핑] 정동만 “부산에 금융·해양 공공기관 집중 배치해야”
  8. 8울산 동구의회 의원 내년 월정수당 15% 인상
  9. 9조국 “민주당 내부 권력투쟁에 사법개혁 적기 놓쳐”
  10. 10[2026 국감 브리핑] 이헌승 “재생에너지 확대로 기후환경 전기요금 반영 억눌러”
  1. 1올해 임시·일용근로자 31년來 최소…40세 이상에 감소 집중
  2. 2CNN,“서울이 뉴욕이면 부산은 LA”…부산 조명
  3. 3[속보]‘부캉이’ 이틀 연속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서 관측
  4. 4‘운명의 일주일’… 가덕도신공항 난제 풀 대책 나올까
  5. 5부산에서 광저우·샤먼으로 가는 직항 하늘길 처음 열렸다
  6. 6‘책임경영 선언’ 정용진 이마트 대표 내정…신규임원 역대 최대
  7. 7'삼성고시' 24~25일 실시, 신입사원 연말 최종 선발
  8. 8SK하이닉스, 솔리다임 상장 중단…중복상장 논란에 주주 반발
  9. 9‘가상자산 과세’ 또 유예될 듯…당정 거쳐 결론 전망
  10. 10국회 재경위 "종부세 개편 땐 임차인 세부담↑·수도권 집중 심화"
  1. 1부산항 인근에 머물고 있는 ‘부캉이’ 이모티콘도 나왔다
  2. 2HD현대중공업 기본급 12만 원 인상 골자 올해 임단협 2차 잠정합의안 마련
  3. 3‘부캉이’ 수로 떠난 날 북항 기름 유출 원인은 유조선
  4. 4태풍 ‘참피’ 영향 부산 이틀 동안 112㎜ 비…주택 담장 무너져
  5. 5중학생이 소화기로 진화 시도…부산 스터디카페서 불
  6. 6부산·울산·경남 흐리고 비…26일 아침까지 이어져
  7. 7프로야구 입장권 부정구매 후 최대 12배 웃돈 받고 되팔아
  8. 8경기 안성 저수지 낚시터서 초등학생 물에 빠져 숨져
  9. 9창원 휴대전화 부품업체서 40대, 낙하물 맞아 숨져
  10. 10'시장 캠프·인수위 출신' 창원시 산하기관장 후보 4명 청문 줄줄이
  1. 1태풍 ‘참피’영향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 취소
  2. 2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3. 3만년 꼴찌 삼성 선두 ‘파란’…前 챔프 KCC 최하위 ‘수모’
  4. 4쇼트트랙 전설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
  5. 5‘성폭행 의혹 제기’ 초교후배…기성용에 1억 배상해야
  6. 6‘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7. 7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8. 8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9. 9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10. 10부산시설공단 여자핸드볼팀 전국체전 2년 연속 금메달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진짜 질문의 시작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국제칼럼 [전체보기]
부산 관광, 마냥 좋기만 할까
원칙이 흔들린 대가
기고 [전체보기]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AI가 찾은 보안 구멍
if, 손아섭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산업은행 부산 이전 혼선 키운 정부, 명확히 답하라
공공 건설현장 안전불감증 여전…관리감독 강화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AI 시대, 평가의 진정성을 묻다
‘이불 킥’의 순간에 도움 될 심리학 지식 한 스푼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거울 속의 외계인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