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화요경제 항산항심] AI는 당신의 ‘눈치’를 읽지 못한다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질문인간’ 저자

  •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질문인간’ 저자
  •  |   입력 : 2026-02-23 19:10:48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한국 기업 특유의 조직문화를 상징하는 단어를 하나 꼽자면? 단연 ‘눈치’일 것이다. 리더가 ‘개떡’같이 말해도, 부하직원은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했다. 행간을 읽고, 의중을 파악하고, 기분을 살피는 능력. 우리는 이것을 ‘일머리’라 불렀다. 이 모호하기 짝이 없는 소통을 ‘센스’와 ‘융통성’으로 포장해 견디는 것. 그게 ‘조직생활’이었다.

하지만 AI가 비즈니스의 파트너로, 혹은 실무의 주체로 우리 현실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이 오랜 불문율은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AI에게 ‘눈치껏 잘해봐’라고 지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둘 중 하나다. 길을 잃고 멈춰 서거나, 없는 길을 환각으로 그려내거나. 한 마디로 ‘작동 오류’. 0과 1의 세계에서 눈치나 느낌은 설 자리가 없어서다.

여기서 우리는 AI 시대의 가장 중요한 역설을 마주한다.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 리더에게는 보다 더 고도화된 ‘언어적 명확성’과 ‘논리적 설계 능력’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과거의 리더십이 ‘사람을 관리하는 기술’이었다면, 미래의 리더십은 ‘일이 되게 하는 구조를 짜는 역량’이다. 이른바 ‘암묵적 관계망’에서 ‘프로토콜 기반 협업’으로의 전환이다.

‘암묵적 관계망’은 누가 누구와 친한지, 누가 누구 라인인지가 중요한 세상이다. 정보는 폐쇄적으로 흐르고, 의사 결정은 밀실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프로토콜 기반 협업’은 컴퓨터가 통신 규약에 맞춰 데이터를 주고받듯, 업무의 입력값(Input)과 출력값(Output), 그리고 수행 규칙이 명확히 정의된 세상이다. 여기서는 감정이 개입할 틈이 없다. 오직 논리와 결과물의 정합성만이 존재한다.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 ‘프로토콜’이 들어서니 조직문화가 투명해진다. 모호한 지시는 리더의 무능으로 간주된다.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이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업무 지시가 ‘코딩’처럼 명확해야 AI든, 외부 전문가든, 타 부서든 누구와도 매끄럽게 협업할 수 있어서다. 결국 AI 도입은 단순히 도구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조직 내 만연한 ‘비효율적인 모호함’을 걷어내는 문화적 구조조정이다.

리더가 갖춰야 할 네트워킹 능력의 정의도 따라서 바뀐다. 과거의 네트워킹이 호형호제, 술잔을 기울이며 내 편을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미래의 네트워킹은 ‘우리의 역량은 언제든 외부 시스템과 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 준비가 되었는가?’를 묻는 인터페이스(Interface) 설계 능력이다.

유능한 리더는 조직을 폐쇄적인 성벽으로 고립시키지 않는다. 언제든 외부와 결합할 수 있는 레고 블록처럼 설계한다. 필요하다면 전 세계의 AI 에이전트, 프리랜서, 파트너사의 설루션을 즉시 ‘플러그인(Plug-in)’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모듈형 조직’이다. 이런 조직에서는 혈연, 지연, 학연이 설 자리가 없다. 내 시스템의 규격과 호환되는지가, 그래서 새로운 가치를 빚어낼 수 있는지가 유일한 협업 조건이 된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카르텔 문화’를 깨뜨릴 수 있는 기술적 해법이기도 하다.

혹자는 묻는다. “그렇게 되면 삭막한 기계적 조직이 되지 않겠느냐”고. 천만의 말씀. 과거를 되짚어보라. 우리는 그동안 업무의 본질이 아닌 ‘의전’과 ‘눈치’ ‘정치’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해왔다. 프로토콜 기반 조직문화가 정착되면, 구성원들은 상사의 표정을 살피는 대신 업무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 불필요한 감정 노동이 줄고, 성과는 데이터로 투명하게 증명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수평적 문화’다. 인간을 소모품이 아닌 주체적인 설계자로 대우하는 방식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우리 조직은 지금 ‘눈치’로 돌아가는가, 아니면 ‘명확한 규약’으로 돌아가는가? 리더인 나는 자신의 ‘감(Feeling)’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관리자’인가, 아니면 AI와 인간이 최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판을 짜는 ‘설계자’인가. AI 시대, 리더의 권위는 목소리 크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가 설계한 프로토콜의 정교함에서 나온다. 모호함을 견디게 하는 건 폭력이다. 리더십은 명확함으로 길을 터주는 거다. 이제 눈치를 끄고, 논리를 켜자. 나의 리더십 해상도는 지금 몇 픽셀(Pixel)인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회 마을버스뿐
  3. 3[도청도설] 발가벗겨진 사우디
  4. 4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5. 5[시민기자] ‘핑크 가을’ 내려앉은 대저생태공원
  6. 6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7. 7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8. 8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9. 9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10. 10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1. 1與, 추미애 ‘재정 빨대’ 진화 안간힘인데 기름 부은 부승찬(종합)
  2. 2또 도마 오른 항만공사 통합…“소신없는 사장 책임” 질타
  3. 3언론노조·국제 비대위 “대주주 엄벌” 청와대 간다
  4. 4여도 야도 시중은행 연쇄 해킹 사태 집중 질타
  5. 5[속보] 진영승 합참의장 “北 적반하장 용납 못해…추가 도발 감행시 단호하게 대응”
  6. 6[2026 국감 브리핑]조경태 “최고 시스템 갖춘 건기연이 가덕도신공항 부지 침하 연구해야”
  7. 7"법령 검토해 결정하겠다"던 김지용 중수청장, 국무회의 참석
  8. 8이 대통령 "관행·절차 얽매이지 말고 주택 공급 전격전 펼치길"
  9. 9통일부. 北 대남확성기 재개 위협에 “문제 해결 노력에 호응” 촉구
  10. 10“통합 진에어, 처음 취지대로 부산 이전해야”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3. 3부산 명물 삼진어묵, 상하이 입맛 잡는다
  4. 4부산 몸집 키우는 해양금융 생태계
  5. 5선원노련 김두영 위원장, ITF(국제운수노련) 집행위 선출
  6. 6이번엔 할리스…고객 개인정보 276만 건 유출(종합)
  7. 7기술유출 엄단…산업부 ‘특사경’ 도입 추진
  8. 8양현재단 20년, 해운·항만 새 항로 모색
  9. 9해양진흥공사, 상임이사 공개 모집
  10. 10노르웨이 북극권 누빈 부산 청소년, 극지경험 공유의 場
  1. 1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회 마을버스뿐
  2. 2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3. 3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4. 4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5. 5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6. 6어린이집 앞 석면지붕 빼곡…소유주들 빈집 등 이유로 방치
  7. 7상습 음주운전 꼼짝마…후 불어야 시동 걸린다
  8. 8주 15시간 넘기면 인건비 30%↑…생존 위해 쪼개기 고용
  9. 9재개발 조합장 수사 정보 채팅방 올린 공무원 벌금
  10. 10“경남 강점 활용한 SMR 특구 만들자”
  1. 1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2. 2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3. 3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4. 4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5. 5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6. 6돈으로 우승은 못 샀다…MLB 월드시리즈 연봉 하위팀 반란
  7. 7‘통산 최다안타 3위’ 손아섭, 두산에서 방출…선수 생명 이어갈까
  8. 8배드민턴 '세계 최강' 안세영, 여자 단식 최다우승 기록세워
  9. 9부산시청 고은, 전국체전 金…女사격 비공인 세계신기록
  10. 10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진짜 질문의 시작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국제칼럼 [전체보기]
원칙이 흔들린 대가
‘빵과 책’·양자경·강말금 그리고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발가벗겨진 사우디
“난 짜장”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LCC 통합 때 약속한 부산 허브 구축, 정부가 이행하라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무색, 제도적 미비점 보완 시급
세상읽기 [전체보기]
다민족 사회
부캉이가 북항에 던진 질문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거울 속의 외계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