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깡이예술마을’로 불리는 부산 영도구 대평동은 과거 대한민국 수리조선의 심장부였다. 1970~1980년대 이곳에서는 선체 외판에 붙은 녹과 따개비를 떼어내는 망치 소리가 온종일 울려 퍼졌고, 그 소리 때문에 ‘깡깡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작업의 주역은 ‘깡깡이 아지매’라 불리던 값싼 임금의 여성들이었고, 수 m 높이에서 밧줄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위험하고 고된 노동을 담당했었다. 부산 영도 해안가를 울리던 그 소리는 한국 수리조선 산업의 황금기를 상징했으며 “대평동에서는 못 고치는 배가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영도는 수리조선의 집적지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대한민국 수리조선 산업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선박의 대형화·자동화, 조선산업 구조조정, 글로벌 경제 위기가 맞물리며 관련 산업은 급격히 위축됐다. 일부 업체는 신조선으로 전환했지만 대다수 영세 수리조선소는 경쟁력을 잃고 쇠락했다.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산 신항과 연계한 대형선박 수리용 수리조선단지 조성을 국가 전략으로 논의했다. 3만 t급 이상 대형선박 검사와 수리 기반을 구축해서 부산항의 기능을 단순한 물류 환적 항구에서 고부가가치 해양서비스 허브로 전환한다는 구상이었고, 2009년 국가 기본계획에 반영되며 거창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민간투자 방식에 대한 무의미한 논쟁을 끝으로 지난해 11월 결국 사업 지정이 해제됐다. 이후 해양수산부는 사업 방식을 ‘비관리청 항만 개발’로 바꿨고, 최근에야 민간 제안서를 접수했다.
사업이 20년 가까이 표류하는 사이 수리조선의 구조적 한계는 더 분명해졌다. 대부분의 수리조선소가 안고 있는 규모의 제한으로 고부가 대형선박 수리는 수주 자체가 불가능하고, 세계 최고 조선기술을 보유한 대한민국 국적 선박이 수리를 위해서 해외로 나가야 하는 아이러니도 속출되고 있다. 단순한 산업 손실이 아니라 고부가 서비스, 기술 축적, 일자리와 경제가 구조적으로 해외에 유출되는 셈이다.
이 시점 우리에게는 미국 조선 시장의 변화에서 미래를 읽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국 조선산업은 감당 불가의 인건비와 천문학적 구조의 비용 문제들이 장기간 누적되면서, 선박의 신규 건조뿐만 아니라 수리 기능의 역량까지 상실하게 된다. 해군과 상선의 정비·수리 물량은 일부 동맹국과 해외 조선소로 이전되었고, 고부가가치 선박 수리 시장은 아시아로 이동했다. 이러한 변화를 미국 입장에서 볼 때는 비용과 효율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쇠락한 수리조선을 되살려서 신조 사업과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자 기회일 수 있다. 문제는 이 기회를 우리가 제대로 받아낼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점이다.
싱가포르와 중국은 국가 전략으로 대형선박 수리와 개조 시장을 점유해 나가고 있다. 우리는 기술과 입지 차원에서의 우월한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정책과 인프라에서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있다. 부산 신항 수리조선단지가 지연되는 동안 글로벌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을 가볍게 넘기면 안 된다. 항상 그랬듯이, 산업의 흥망보다 더 큰 문제는 전략의 부재다.
전략과 정책은 방향이 명확해야 한다. 첫째, 부산 신항 수리조선단지를 단순한 민간투자 사업이 아니라 국가 해양산업의 전략 자산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군함·공공선박 수리와 고부가가치 상선 수리를 결합한 MRO 특화 전략을 공식화하고, 해외에서 유입되는 수리 수요를 체계적으로 흡수해야 한다. 둘째, 친환경·스마트 선박 개조, 디지털 정비, 탄소 저감 기술을 수리조선단지의 핵심 기능으로 설정하고 국제해사기구(IMO) 환경 규제 강화에 선제 대응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초기 인프라 구축과 핵심 기술 개발에 대한 재정적 책임을 분명히 하고, 민간에는 장기 물량과 수익 구조의 예측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넷째, 명지·녹산 국가산단과 연계해 연구개발 전문 인력이 집적되는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은 그 자체만으로 성과가 될 수는 없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전략 전환을 실행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살려 나가야 한다. ‘해양 수도 부산’이 구호에 머물지 않으려면, 해수부는 수리조선을 항만 핵심 산업의 한 축으로 규정하고 재정·금융·제도 지원을 결합한 실행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단기 재정 부담을 이유로 전략 산업을 민간에만 떠넘기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국제해사기구의 환경 규제 강화와 선박의 대형화·고령화는 항만 경쟁력의 기준을 바꿔 놓고 있다. 이제 항만의 경쟁력은 물동량이 아니라 서비스다. 부산 신항 수리조선단지는 부산항이 글로벌 해양 서비스 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지를 가르는 시금석이다. 미국이 새로 열고 있는 시장을 우리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해수부 이전의 성패 역시 이 질문에 달려 있다. 깡깡이 망치 소리는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전략과 정책으로 다시 울려야 할 미래의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