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하늘을 나는 바위를 그리고 싶었다. 중력장에서 자유로운 바위, 어쩌면 나를 무겁게 하는 중력에서 벗어나 날고 싶었다. 중력을 거스르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중력을 따라가는 것은 자연스럽다. 지금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게 맞는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실존적인 고민을 하는 그 시점, 중력은 나의 삶에 큰 짐이었다. 나를 옭아매는 속박이면서 감당해야 할 책임이자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했다. 그런 중력을 거부하고 삶의 부담을 벗어나 훨훨 날아올라 짓눌린 무게감으로부터 벗어나 날아올라 보고 싶었다.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달린다. 학업 취업 승진 결혼, 목표를 하나씩 달성할 때마다 우리는 승리자가 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기쁨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짧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그토록 원했던 결과물들 사이에 서 있는 낯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분명히 목표를 이뤘는데, 마치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내가 원치 않는 곳에 내려앉은 듯하다. 아무도 나를 밀어내지 않았는데, 나 스스로 삶의 중심에서 밀려난 것 같은 기묘한 소외감을, 이 모든 게 중력이었다.
종교도 하나의 중력이다. 빠져나오기 힘들고 무겁고 끈적끈적한 중력이다. 그 안에서는 근심걱정 하나 없이 행복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흔히 책임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 목 뒤가 뻣뻣해지는 긴장을 느낀다. 그것은 대개 나를 짓누르는 바위이거나, 숨가쁘게 달려야만 겨우 유지되는 팽팽한 밧줄 같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실수하면 끝장이야’ ‘나는 완벽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온 시간, ‘나는 못났고 세상은 살기 힘들며 앞으로도 희망은 없어’라는 부정적인 틀에 갇힌 상태에서 나무를 만났다. 하늘의 별들과 만나기 위해 대지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나무. 지구상에서 나무는 언제부터 어떤 형태로 있었을까?
우주의 역사는 138억 년, 태양과 지구는 46억 년 전에 생성됐고, 인간 즉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한 건 약 20만 년 전이니 인간이 지구 생명체의 긴 역사에서 차지한 시간은 0.01%에도 미치지 않는다. 반면 나무는 초기(고생대)에는 겉씨식물이 등장하고 이후 중생대에 꽃이 있는 속씨식물이 등장했으니 나무의 역사는 4억 년 정도 된다고 볼 수 있다. 참 보잘 것 없는 역사를 가지고도 오만한 인간이다. 끊임없는 성취에 대한 압박은 현대인의 내면을 포화상태로 만든다.
그러나 나무는 겨울이 오면 정지한 채 스스로를 지킨다. 수분을 뿌리로 보내고 잎을 떨어뜨린다. 수분이 많은 상태로 겨울을 맞이하면 얼어죽기 때문이다. 그렇게 앙상한 가지로 몇 달을 버티다 봄이 오면 다시 푸르름을 펼치며 자라게 된다. 눈에 띄지 않게 땅속 깊이 뻗은 뿌리에 대한 믿음으로 중력을 거스른다. 성장은 확인일 뿐이다.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를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사랑은 우리 삶의 또 다른 중력과 같다는 것을 나무는 보여주는 듯하다.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작용하고, 우리가 떨어질 때 받아주고, 방황할 때 방향을 알려주는 힘이다.
나무는 대지로부터 양분을 받아 대지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릴 때 더 높은 하늘로 올라 별을 만나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 즉 나라는 존재가 홀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관계와 역사 속에 잇닿아 있다는 가르침과 같다. 뿌리 내리기는 과거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뻗어가는 수행이다. 인간에게는 권리만큼이나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질서와 자유, 순종과 책임, 안전과 위험처럼 상반되는 가치들을 동시에 품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책임이란 단어를 나를 갉아먹는 부채 혹은 도망치고 싶은 올가미로 여겨왔다. 하지만 삶의 파고를 몇 번 넘기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진실이 하나 있다. 책임은 나를 가두는 벽이 아니라 내가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게 붙들어주는 삶의 중력이었다는 사실이다. 책임이 무거워 하나둘씩 도망치듯 내려놓았을 때, 잠깐의 해방감 뒤에 찾아온 것은 자유가 아닌 헐거워진 마음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분은 자기가 이 지구에 사는 동안 백만 그루 나무를 심겠다고 한다. 나도 나무를 통해 별의 노래를 들려준 그분을 위해 한 그루의 나무라도 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