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이제 특정 산업이나 세대의 취향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사회의 질서와 소통 방식, 시민의 행동 규범까지 형성하는 문화로 작동한다. 필자가 게임 산업 현장을 꾸준히 지켜보며 확신하게 된 점은 게임이 단순한 콘텐츠를 넘어 도시와 사회의 문화를 바꾸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1월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 게임 전시회인 지스타 개최 기간, 벡스코 광장에는 코스플레이어를 촬영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그 풍경 자체가 하나의 장관이었다. 별도의 안내가 없어도 줄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됐고 줄 안에서는 촬영하고 줄 밖에서는 촬영하지 않는 암묵적 규칙이 자연스럽게 지켜졌다. 게임을 통해 익힌 규칙 준수와 공정성, 타인에 대한 배려가 현실에서 그대로 발현된 사례였다. 이 장면을 보며 ‘문화가 바뀐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문화 전환(Cultural Transformation)이란 단순한 취향 변화나 유행의 이동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이 지키는 질서와 행동 방식, 소통의 기준과 가치관이 새로운 방향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뜻한다. 즉,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달라지는 과정이다. 게임은 이러한 변화가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공간이다. 게임에서는 규칙을 지켜야 플레이가 가능하고 타인을 침해하면 제재가 따르며, 공정성이 핵심 원칙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경험은 세대의 기본 감각으로 축적되고 현실에서도 실천되며 새로운 문화적 기준을 만들어낸다. 지스타 기간 벡스코 광장의 질서 있는 풍경이 좋은 예다. 그래서 필자는 게임이 문화 전환의 출발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게임이 문화로 작동한다는 점은 산업 성장 지표보다 먼저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서 확인된다. 과거 게임이 ‘즐기는 행위’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게임을 매개로 관계를 맺고 경험을 공유하며 공동의 기억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확장됐다. 게임 속 세계관과 캐릭터, 규칙과 서사는 이용자 사이에서 공통의 언어가 되고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의 대화와 만남으로 이어진다. 게임이 단순한 소비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경험을 조직하는 틀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미 문화 전환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게임 산업은 기술 발전을 넘어 사회적 의미로 확장되고 있다. 이용자는 더 이상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스트리머, 유저 창작자(UGC), e스포츠 선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됐다. 게임은 콘텐츠를 넘어 관계와 규칙, 정체성이 형성되는 ‘참여형 문화’이자 ‘살아 있는 문화 실험실’로 자리 잡았다. 1950년대 초 디지털 게임에서 출발해 1970년대 오락실 게임을 거쳐 대중으로 확산된 이후, 게임의 영향력은 꾸준히 커졌다. 온라인 게임은 새로운 소통 문화를 만들었고 모바일 게임은 일상의 연결성을 강화했으며 글로벌 IP 게임은 세계관을 소비하는 시대를 열었다. 게임이 기술과 사회 변화를 가장 먼저 실험하는 미래 문화의 전초기지가 된 것이다.
부산은 지스타 개최 도시이자 인디게임의 발원지이며 e스포츠의 성지로서 게임 관련 창업·인재·제작 기반을 촘촘히 구축해 왔다. 이러한 자산은 ‘게임으로 도시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도시’라는 점에서 부산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이다. 부산이 게임 허브 도시로 도약한다는 것은 단순히 산업 하나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도시의 문화 구조와 시민 일상, 도시 서비스의 방식을 새롭게 설계하는 일이다. 이제 게임을 산업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도시 전략의 핵심 문화 인프라로 인식하는 관점 전환과 실천이 필요하다.
첫째, AI·UGC 기반의 ‘참여형 창작도시’로 전환해야 한다. 게임 제작 기술의 대중화와 인공지능 시대에 맞춰 시민 창작자, 예비 개발자, 지역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개방형 창작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게임 개발 교육과 공동 제작 등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창작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 둘째, 게임을 기반으로 ‘도시형 문화 경험’을 확장해야 한다. 지스타와 BIC를 중심으로 도심 상권, 관광, 지역 콘텐츠 산업이 연결되는 도시 전체의 문화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게임을 도심에서 체험하고 소비하며 공유하는 경험은 새로운 도시 소비와 관광 패턴을 이끌어낼 수 있다. 셋째, 글로벌 허브 도시로서 국제 협력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부산은 이미 동유럽과 동남아 등과 협력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해외 게임 기업·기관과의 비즈니스 매칭, 공동 제작, 인재 교류를 통해 부산을 글로벌 디지털 콘텐츠 테스트베드로 확고히 자리매김해야 한다.
생활 속의 게임과 함께 문화 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부산이 게임 허브 도시로 도약한다는 것은 산업 기반의 확장을 넘어 새로운 시민 문화와 도시 서비스, 글로벌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문환 전환 허브 도시가 된다는 의미다. 부산이 산업을 넘어 문화 중심지로 성장하기 위해 게임 산업을 핵심 전략 산업으로 육성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