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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가족 부양의 허울

의료급여 부양비 폐지, 가족 인식 근본적 전환

개인 중심 권리 복지로 공공 역할 재설계 필요

김종천 영파의료재단 이사장

  • 김종천 영파의료재단 이사장
  •  |   입력 : 2026-01-06 18:38:39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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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급여 부양비 제도가 올해부터 폐지됐다. 이는 복지 행정의 세부 규정 하나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가 ‘가족’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국가와 가족, 그리고 개인 간의 책임을 어떻게 재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인식 전환을 제도적으로 확인한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변화는 의료급여 제도의 조정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족관과 복지정책의 성격이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사회적 선언인 셈이다. 우리나라 복지정책은 오랫동안 ‘가족 중심 모델’ 에 근거해 왔다. 부모는 자녀의 교육과 생계를 책임졌고, 성인이 된 자녀는 노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사회적 규범이자 도덕적 의무였던 것이다. 이러한 관행은 단순한 윤리 차원을 넘어 법과 제도로 자리 잡아 의료급여 부양비 제도에도 반영돼 왔다. 개인이 아무리 가난하고 병들어 있어도 가족 중 일정한 소득이나 재산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국가는 가족의 부양 가능성을 이유로 지원을 외면해왔다. 이는 복지의 출발점을 개인이 아닌 가족 전체의 재정 상태에 두는 구조였다. 국가는 가족을 1차적 안전망으로 전제했고, 가족이 책임지지 못할 때에만 2차적으로 개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현실과 맞지 않았다. 가장 큰 변화는 가족의 구조적 해체와 기능 약화다. 1인 가구가 급증해 이미 1000만 가구를 넘어섰고, 비혼과 만혼의 일상화, 이혼과 재혼의 증가, 고령 독거노인의 확대는 가족을 더 이상 하나의 생활 경제 공동체로 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법적으로는 가족이지만 실제로는 수십 년간 왕래조차 없는 사례가 흔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 내부의 경제적 여력 자체가 크게 약화됐다. 오늘의 청년 세대는 불안정한 고용과 주거비용 부담으로 부모 부양은커녕 자기 생존도 버거운 상황에 놓여 있다. 경제활동인구의 중심이던 40대 취업자가 2022년 7월 이후 연속 감소하는 추세를 보면 중장년층 역시 노후를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에 진입한 것이 분명하다. ‘부양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전제가 성립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여기에 가족 관계의 질적 변화도 중요하다. 갈등, 학대, 장기적 단절, 정서적 파탄을 겪은 사람들에게 가족은 보호망이 아니라 상처의 원천인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부양의무자’라는 법적 개념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허울인 것이다.

의료급여 부양비 제도는 2000년 당시 취지와 달리 지금에 와서는 빈곤과 질병을 제도 밖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해왔다. 가족에게 부담이 전가될 것을 우려해 의료 이용을 포기하거나, 병을 키운 뒤 응급 상황에서야 의료체계에 진입하는 사례가 반복되어 왔던 것이다. 이는 개인의 건강권을 침해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오히려 더 큰 의료비와 사회적 비용을 유발했다. 또한 이 제도는 가족 관계를 왜곡시켰다. 국가가 가족에게 책임을 강제하는 구조 속에서, 가족은 돌봄의 주체가 아니라 복지 접근을 가로막는 변수로 작동한 셈이다.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현실은 가족 관계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과 단절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 면도 있어왔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부양비 제도의 폐지는 ‘가족 책임 중심 복지’에서 ‘개인 권리 중심 복지’로의 명확한 이동을 뜻한다. 국가는 이제 개인을 가족의 종속변수로 보지 않고, 가족 관계와 무관하게 최소한의 의료 접근권을 보장해야 할 독립된 권리 주체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는 중요한 가치 전환이다. 가족의 존재 유무나 관계 유지 여부가 의료급여 수급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제도화된 것이다. 의료는 시혜나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권이라는 인식이 한 단계 분명해졌다.

의료급여 부양비 제도의 폐지를 두고 ‘가족 가치의 붕괴’를 우려하는 시각도 물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변화의 본질을 오해한 해석에 가깝다. 이 제도 개편은 가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 강제로 씌워졌던 제도적 부담을 내려놓는 과정이다. 국가는 이제 가족을 복지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의무와 강제의 대상이 아니라, 자발적 돌봄과 정서적 연대의 공동체로 재정의 한 것이다. 부양이 법과 제도에 의해 강요될 때 가족은 갈등의 원인이 되지만, 선택과 책임의 영역으로 남을 때 가족은 오히려 더 인간적인 관계로 회복될 수 있다. 물론 이 전환은 국가 책임의 확대를 전제로 한다. 의료급여 대상 확대는 재정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의료 이용의 적정성 관리, 취약계층의 정밀한 발굴 등의 과제를 동시에 요구한다. 이는 단순히 가족 대신 국가가 책임진다는 선언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국가와 지자체가 어떻게 위험을 분담하고, 개인의 존엄을 유지하면서도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것인가에 있다. 가족이 내려놓은 책임을 국가가 무작정 떠안는 것이 아니라, 공공과 공동체의 역할을 재설계하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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