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라는 보고서에서 연명의료 거부 의향을 지닌 고령층이 84.1%임에도 실제 연명의료를 받지 않은 비율은 16.7%에 그치는 현실을 지적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2018년 이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의 등록건수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연명의료 시술을 받는 환자 수 역시 증가한 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의향서)는 연명의료중단 등에 관한 의사를 미리 밝혀 등록해 두는 서류인데, 만 19세 이상이면 종합병원, 보건소,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등에서 상담·작성·등록할 수 있다. 최근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 만나는 중증 환자들 중 의향서를 미리 작성해 둔 환자가 상당히 많다. 이들은 의향서를 등록하면서 삶의 마지막 시기에 고통스러운 치료를 피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는 이와 많이 다르다.
연명의료에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등이 포함된다. 각각의 시술에 대한 거부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숨을 쉬기는 싫지만, 혈압상승제 정도는 쓰고 싶은 사람이 많다. 혹은 마지막 순간 심폐소생술만 거부하고픈 이도 있다. 의향서에는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에 동의합니다’고 돼 있을 뿐, 어떤 시술을 어느 정도 받길 원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이지 않다. 그런데 의료진이 의향서를 조회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환자가 이미 자기 의사를 직접 밝힐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의향서가 확인된다고 해도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다. 결국, 구체적인 연명의료의 시행 정도는 가족의 의사에 따라 정하게 된다.
미국심장협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에서는 현장 구급대와 응급실 단계에서 POLST(Physician Order for Life-Sustaining Treatment)를 존중할 것을 강조한다. POLST는 연명의료 술기(術技, 환자를 진단하거나 치료하기 위해 의료인이 수행하는 의학적 기술, 시술 또는 수술 방법) 각각에 대한 시행 여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대신 심폐소생술의 시행 여부와 치료 수준을 정하게 되어 있고, 3단계로 나누어진 치료 수준에 따라 병원이송, 중환자실 입원, 인공호흡 등 시행 여부가 결정되는 구조이다. POLST는 만성 질병이나 고령으로 상태 악화가 충분히 예상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데, 이것이 우리의 의향서와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다. 현재의 몸 상태를 고려하여 가까운 미래의 치료 방침을 정하는 것이고, 명칭에 ‘physician order’가 들어가는 만큼 의사의 상담과 결정을 전제하므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치료 수준을 결정할 수 있다. 반면 의향서는 막연한 미래 상황에 대한 상상을 바탕으로 건강한 사람도 작성할 수 있고,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도 등록할 수 있어서 결정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연명의료를 유보 또는 중단할 수 있는 대상을 말기 혹은 임종기 환자로 제한하고 있는데, ‘말기’는 수개월 내 할 것으로 진단을 받은 경우, ‘임종기’는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고 사망이 임박한 경우로 정의한다. 사전에 말기 질환으로 진단을 받지 않은 환자는 임종 과정에 있는 것으로 확인될 때까지 강도 높은 소생 치료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또한 의향서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는 대상의 범위가 넓은 데 비하면 연명의료를 유보할 수 있는 대상은 POLST에 비해서도 훨씬 좁으니 기대와 실제 사이의 괴리가 클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 업무 보고회에서 연명의료를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인센티브를 언급한 대통령 지시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연명의료는 경제 논리가 아닌 자기결정권과 고통 경감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다. 현 제도는 환자의 의사를 담아내고 존중하기 어렵게 만들어진 것이 사실인 만큼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