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국토의 3분의 2가 산지다. 그런데 최고봉은 해발 1950m의 한라산이다. 가장 높은 산이 2000m가 채 되지 않는 나라에서 훈련한 산악인들이 히말라야 8000m 고봉에서 이름을 날린다. 14개의 히말라야 8000m 고봉 완등 기록을 보면 한국은 다른 산악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완등자를 배출했고 고 김창호 대장은 14번째 무산소 완등자로 이름을 올렸다. 단순히 고봉의 정상을 밟는 것뿐만 아니라 고난도 등반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올린다.
8000m 14좌 완등자 기록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의미 있는 유일한 완등 기록을 가지고 있다. 바로 부산산악연맹의 ‘다이내믹 부산 희망원정대’가 이룬 단일팀 최초이자 최단기 14좌 완등이라는 기록이다. 2006년 시작해 2011년까지 5년 4개월 7일 만에 이룬 쾌거는 한국은 물론 세계에 ‘부산의 힘’과 ‘부산’이라는 이름을 알렸다. 2000m는커녕 간신히 800m를 넘는 부산의 최고봉 고당봉을 품은 금정산에서 훈련한 산악인들이 이룬 성과다. 14좌 완등을 이룬 개인은 전 세계적으로 많지만 단일팀을 구성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며 완등을 이룬 팀은 유일하다. 그래서 협력과 공동체 의식의 중요성보다는 갈수록 개인화하는 산악계 풍토에서 다시 이루기 쉽지 않은 성과로 평가받는다. 제주도산악연맹이 부산 희망원정대와 같이 2006년에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으로 14좌 프로젝트를 추진하지만 2016년 12번째 봉 등정 이후 답보 상태인 것을 봐도 단일팀 완등의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이런 단일 도시 단일팀으로는 세계 최초로 이룬 부산 희망원정대의 8000m 14좌 완등을 계기로 부산 지역의 산악 역사와 활동 사료를 보존하고 연구할 산악박물관의 건립 필요성이 제기됐다. 14좌 완등 이듬해인 2012년 부산산악포럼이 부산산악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다. 부산산악포럼은 지역의 여러 산악 단체를 아우른 산악인들이 2003년 결성한 비영리 학술문화단체다. 당시 부산산악포럼은 14좌 완등 기록을 전시해 부산의 저력을 홍보하고 산악활동과 관련한 유물을 수집·보존하고 연구하는 한편 늘어나는 등산레저 인구를 대상으로 올바른 등산 문화를 보급하는 교육장의 역할을 할 공간으로 부산산악박물관을 추진했지만 건립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후로도 부산산악포럼을 중심으로 지역 산악계는 물론 부산시의회에서도 건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지속해서 냈다. 그런데 처음 건립 필요성이 제기된 지 14년 만에 부산산악박물관이 진척을 보게 됐다. 지난달 금정산이 24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다. 지정 후 기후에너지환경부 고시에는 금정구 장전동에 문화시설 중 하나로 산악박물관 건립이 포함됐다. 부산산악박물관 입지는 지역 산악인의 요람이자 성지와 같은 금정산의 초입이다. 금정산은 14좌 완등을 이룬 부산 희망원정대 대원들이 산을 배우고 등반 실력을 기른 산인 만큼 산악박물관의 입지로 금정산 외의 장소는 생각하기 어렵다. 지역 산악계의 오랜 과제 하나를 풀게 된 셈이기는 하나 시기와 규모, 구성, 예산 마련 방안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고 산악 분야만으로 구성될 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라 가야할 길이 멀다.
산악박물관의 건립 자체만큼 중요한 일은 어떤 시설을 갖추고 어떻게 운영하느냐이다. 강원도 속초의 국립산악박물관은 기획전시실, 산악체험실, 고산체험실, 등산장비와 산악인들을 소개하는 전시실 등 산악자료 수집, 전시·연구, 교육 등의 역할에 충실한 국내 대표적인 산악박물관이다. 하지만 산림청 산하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가 수탁 운영하는 데서 오는 한계가 있다. 한라산 관음사 코스의 들머리에 있는 한라산산악박물관은 크게 4개의 공간으로 나눴는데 이 가운데 3개 공간이 한라산 탐방로와 등반, 세계자연유산 소개에 배정됐다. ‘산악’박물관이라기보다는 ‘한라산’박물관에 가깝다. 북한산국립공원에 있는 국립공원 산악박물관은 북카페와 전시공간의 기능으로 한정된다.
부산산악박물관도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이 설립하는 시설이다 보니 현실적으로 ‘산악활동’뿐만 아니라 생태 자연 역사문화유산 소개와 같은 ‘금정산’과의 균형점을 잘 찾아야 한다. 산악 분야만 놓고 보면 부산산악박물관은 사전적 의미의 박물관을 넘어서 지역 등반 활동의 역사적 기록을 전시하고 보존하고 연구하는 공간을 넘어 교육과 세미나, 강연회 등 다양한 등산 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산악인과 일반 시민을 모두 아우르는 살아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산악계와 학계 경제계 등을 아우른 협의체를 구성해 부산산악박물관의 시설과 운영, 전시물 확보 등을 위한 방향을 설정할 필요도 있다. 박물관의 건립까지는 할 일이 많지만 ‘산으로 가는’ 일을 피하고 전국 어디보다 충실한 산악박물관이 들어섰으면 한다.
이진규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