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용암 영어’. 역대급으로 어려워 ‘불영어’를 뛰어넘는 마그마(용암)로 표현했다. 절대평가 체제에서 1등급(원점수 90점 이상)을 받은 수험생 비율은 3.11%(1만5154명)에 불과했다. 2018년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된 뒤 1등급 비율이 가장 낮았다. 상대평가 1등급 기준이 4%인 것을 감안하면 올해 영어는 절대평가의 취지를 완전히 상실했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2018년 영어를 절대평가로 전환한 이유는 사교육 부담 경감과 학습의 빈부 격차 줄이기다. 어릴 때부터 영어 유치원과 해외 유학·연수 등으로 단련된, 가정 형편이 좋은 학생에 비해 서민가정의 학생이 웬만한 노력으로는 그 정도 성적을 내기 어렵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부작용도 있었다. 특정연도(2018학년도 10.03%·2021학년도 12.66%)에는 1등급 비율이 10%를 넘는 ‘물영어’로 변별력이 없다는 핀잔도 들었다. 최근 입시에서 탐구 영역보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찬밥이 됐다.
수능의 변방에 있던 영어는 올해 당락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수시모집 수험생이 어려운 영어 때문에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대거 탈락할 처지다. 뜻하지 않게 경쟁 인원이 유입된 정시모집은 흡사 폭풍전야의 분위기다. 수시 합격을 예상하고 정시 준비를 꼼꼼하게 하지 못했던 수험생은 일찌감치 재수학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교육계에서는 절대평가 폐지 주장이 나온다. 서울 강남학군에서는 중학교 때 선행으로 영어를 끝내고 고교에선 국어와 수학에 올인하는 패턴이 뉴노멀이 됐다는 것이다. 절대평가의 취지를 살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어 사교육 의존 심화와 공교육 붕괴를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용암 영어’의 파급력으로 내년 사교육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리란 전망이 나온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도 긴장한다. 50만 명에 달하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성난 민심이 입시정책의 신뢰 문제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의 사과가 나온 지 하루만에 수능 출제와 검토에 정밀한 조사를 시행하겠다며 빠르게 머리를 숙였다. 앞서 2002학년도 불수능 논란 때 김대중 대통령이 공식 사과했고, 2019학년도 ‘불국어’ 파동 때도 평가원장이 사과했다. 2023년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어려웠던 6월 모의평가와 관련해 킬러 문항 배제 지시를 내린 뒤 평가원장이 사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윤정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