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오후 8시 59분 한 줄짜리 속보가 떴다. ‘신안 해상서 승객 260여 명 태운 여객선 좌초’. 눈으로 단 한 줄을 확인한 순간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아마 속보를 접한 사람은 대부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지리적으로 ‘신안 해상’이라는 장소, 거기다 여객선 좌초라는 사건 내용까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절대 잊히지 않는 사건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 뒤 후속 기사가 잇따랐다. 좌초 시각과 지역, 사고 경위, 탑승객 상황과 구조 여부 등이 속속 전해졌다. 가장 중요한 탑승객은 승객 246명과 승무원 21명을 합쳐 267명이란 정확한 수치도 공개됐다.
그때부터 여러 분야에서 기사가 쏟아졌다.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인명 피해가 없도록 신속히 사고 수습에 나서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구조 현황을 실시간 공개하라”고 지시했다. 김민석 국무총리와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 등도 가세했다. 이들이 앞다퉈 목소리를 낸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해경은 경비함정 17척, 연안 구조정 4척, 항공기 1대, 서해 특수구조대 등을 급파해 탑승객 구조에 나섰다. 여객선 내 승객과 승무원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기다렸으며 어린이 임신부 노약자 등이 우선 구조됐다. 탑승객들은 배 후미 차량을 싣는 램프를 통해 해경 함정 등에 옮겨 탔다.
여객선이 좌초한 직후부터 탑승객들의 긴박했던 상황은 SNS로 실시간 전파됐다. 한 탑승객은 “배에서 쾅 소리가 나더니 배가 기울었다가 어디 외딴섬에 잠시 기대고 있는 것 같다”며 “급히 구명조끼 다 챙기고 지금은 (구명)조끼 입고 맨 위에 올라와 있다”고 밝혔다. “어린이와 노약자부터 순차적으로 이동한다는 안내가 나왔다”, “살아서 돌아오겠다”는 비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SNS를 접하면서, 구조 상황을 지켜보면서, 탑승객들이 부두로 걸어 나오는 사진을 보면서도 차마 쉽게 꺼내지 못한 말이 있었다. 거론하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왠지 그 말은 267명 모두 육지에 완벽하게 발을 디뎠는지 확인하고 난 뒤 공식적으로 발표해야 할 것 같았다. 그 말은 바로 ‘전원 구조’다.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선 그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았다. 기자도 기사를 작성하는 중 그 말을 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해경 함정에 옮겨 타 1차로 출발한 탑승객들이 오후 11시 10분께 목포 부두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출발한 탑승객들은 자정을 넘긴 다음 날 0시 40분께 목포 땅을 밟았다. 그제야 오랫동안 숨죽이며 기다렸던 ‘전원 구조’란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사고 소식을 접한 사람 대부분 그 말이 공식 발표되기를 피 말리면서 기다렸을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였다. 새로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해경이 조사한 사고 경위를 듣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해경은 여객선을 좌초시켜 탑승객들을 다치게 한 혐의(중과실치상)로 일등항해사 A 씨 등을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발부했다.
이들은 전남 신안군 족도 인근 해상에서 딴짓을 하느라 여객선의 키를 제대로 조종(조타)하지 않아 좌초 사고를 낸 혐의를 받는다. 딴짓이란 건 사고 당시 휴대전화 본 것을 말한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사고 지점으로부터 1600m 떨어진 해상에서 변침(방향 전환)을 해야 했지만 실행하지 않았다. 사고 발생 지점인 신안군 해상은 연안 여객선들의 항로가 빼곡한 협수로에 속해 통상 선박은 자동항법장치에 의존해 운항하지 않는다. 거기다 좁은 수로를 지나갈 때는 선장이 선박의 조종을 지휘해야 하지만 사고 당시 선장은 조타실에 없었다.
일등항해사 A 씨는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법원에 출석하면서 취재진에게 “많은 분에게 피해를 끼쳐 죄송하고, 임산부께 더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직선거리에서만 자동항법장치를 켜고, 변침(방향 전환) 구간에서는 수동으로 변경한다”며 “(휴대전화로) 네이버를 잠깐 봤다”고 밝혔다.
그 바다가 어떤 바다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바다에서 자신을 포함해 267명의 목숨을 책임진 사람이 휴대전화를 보느라 또다시 참사를 일으킬 뻔했다.
몇 년 전 서울 이태원에서도 150명이 넘는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 안타까워했다. 참사에 대한 두려움과 트라우마는 차곡차곡 쌓이는 데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무기력하게 지켜보고 ‘전원 구조’란 말을 애타게 기다려야 하는 세상에서 더는 살 수 없다.
김희국 디지털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