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 개미. 미국 증시 등 해외에 투자하는 개인을 말한다. 오랜 시간 박스권에 갇힌 경쟁력 없는 코스피에 대한 불신이 크게 작용했다. 최근에는 급격한 원화 약세(고환율)가 이어지면서 미국 증시에 직접 투자하는 개미가 늘어났다. 다시 말해, 서학개미 증가는 고환율의 ‘원인이 아닌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국내 개인투자자가 지난달 순매수한 미국 주식은 68억5000만 달러(한화 약 10조99억 원)다. 코스피가 올해 70% 넘게 급등했음에도 같은 기간 국내 주식 순매수는 100분의 1수준인 1109억 원에 그쳤다.
하지만 고환율 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의 인식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리거를 당긴 것은 해외주식 양도소득세 강화 논란이다. 국내 투자와 달리 해외주식 투자에는 연간 250만 원이 넘는 수익에 대해 22%의 양도소득세율이 부과된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70원 대를 오르내리자 정부는 서학개미의 미국 증시 투자로 인해 달러 수요가 급증한 것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해외주식에 대한 양도세를 높여 해외투자를 줄이고 달러 수요를 낮춰 환율을 잡겠다는 그림이다.
잘못된 진단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고환율은 서학개미 투자 급증에 따른 달러 수요 증가도 일부 원인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통화량 증가와 대미 관세 협상, 기업의 미국 투자 급증, 한미 금리 역전 등 다양한데 이를 개인 탓으로 몰고가는 것은 전형적인 ‘물타기’라는 지적이다.
지난 26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양도소득세 강화 등 세제나 규제를 환율 안정 방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항간에 농담처럼 떠돌던 이야기가 정책으로 구현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이다. 구 부총리 발언 뒤 ‘해외주식 양도세를 40%로 인상한다’는 지라시가 돌기도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더 하다. 이 총재는 지난 27일 금리동결 뒤 기자간담회에서 ‘청년 세대’를 콕 찝어서 “쿨해서 해외투자를 한다고 하더라”며 서학개미를 하나의 유행처럼 인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통화량 급증과 한미 금리 역전의 몸통인 한은이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은 기가 막힌다. 당국이 환율 방어에 국민의 노후 자산인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서학개미를 희생양으로 들고 나왔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해외주식 양도세 강화 같은 궁색한 해법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정부의 처지가 딱하다. 이런 정부가 제대로 된 환율 안정 처방을 내놓을 수 있을 지에 대해 시장의 불안은 커진다.
윤정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