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영혼이 없다.” 대중이 공직자를 비하하거나 부당한 일 처리에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흔히 쓰는 말이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처음 ‘공무원 영혼론’을 제기했을 때는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을 강조한 표현이었다. 그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에서 “관료제는 개인 감정을 갖지 않는다. 이상적인 관료는 영혼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의 행정학자 랄프 험멜에 의해 의미가 바뀌었다. 그는 1977년 발간한 ‘관료적 경험’에서 “공무원은 생김새가 인간과 비슷해도 머리와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관료제를 비판했다. 그의 언급을 증명이라도 하듯 ‘복지부동’ ‘보신주의’는 공직사회 부정적 행태를 대표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공무원도 할 말이 없지는 않다. 우리나라는 1949년 국가공무원법 제정 때부터 57조에 ‘복종 의무’를 못 박았다. 공직사회의 정권에 대한 맹목적 추종, 무사안일을 법으로 강제한 셈이다. 상명하복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검찰은 2004년 검찰청법을 개정해 ‘명령 복종’을 ‘지휘·감독에 따른다’로 바꾸고 이의제기권을 인정했다. 그런데 공무원 복종 의무는 여러 차례 개정에도 쭉 유지됐다.
시대 변화에 뒤처진 법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던 이 조항이 76년 만에 없어진다. 정부가 지난 25일 입법예고한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의 핵심은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바꾼다는 것이다. 하급자는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따르되 서로 협력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했다. 위법한 지휘·감독은 따르지 않을 수 있고, 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런 조치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제기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공무원도 상관의 위법·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를 반영하자는 취지다. 군인도 위헌·위법적 명령은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현행 군형법에는 정당한 명령을 어겼을 때 처벌하도록 돼있는데, 불법 명령 항명권도 법으로 보장하자는 의미다.
개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걱정 반, 기대 반’이다. 복종 의무가 사라지면 공직 기강이 흔들리고 업무 능률이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일각의 우려도 있다. 정부는 위법적 판단의 구체적 기준을 시행령에 담겠다고 한다. 공직사회가 정권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껏 일할 풍토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박태우 서울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