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시 노성면의 산세가 수려한 곳에 조선 중기 호서지방의 대표적인 양반 가옥으로 알려진 명재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190호)이 자리하고 있다. 명재고택은 논산 출신의 대학자인 윤증이 생전에 지은 집이다. 한반도의 중심 뼈대를 이룬 백두대간에서 이어져 내려온 용맥(龍脈·정기가 흐르는 산줄기)이 좌우로 요동치고 상하로 기복을 하면서 전진을 거듭하다가 금강정맥을 탄생시켰으며, 이 정맥이 솟구치기를 반복하면서 뻗어나가 금남기맥을 낳았다. 금남기맥에서 뻗은 튼실한 용맥은 노성산에 다다라 몸을 추스른 후 재차 앞으로 나아가다가 서서히 몸을 낮추고 속도를 조절하여 명재고택에 안주하니 고택은 생기가 충만한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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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논산시 노성면에 위치한 명재고택. |
고택의 주산(뒷산)인 노성산 자락은 노적봉(露積峯·곡식을 쌓은 듯한 형상의 산)으로 재물이 넉넉함을 암시하고, 고택으로 불어닥치는 뒤쪽 바람도 막으면서 지속적으로 고택에 생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고택 좌우 측의 세찬 바람과 미세먼지 같은 살기(殺氣)를 막아야 하는 좌청룡과 우백호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으며, 안산(앞산) 또한 너무 떨어져 있어 앞쪽에서 불어닥치는 명재고택 찬바람과 미세먼지, 도로살(道路殺·차량에 의한 매연, 소음 등)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담장과 대문이 없어 집안의 생기가 흐트러질 수 있으며, 고택 앞쪽에 길게 이어진 노성산성길은 재물이 빠져나가는 ‘직류수’이다.
그렇지만 명재고택은 풍수적으로 불리한 여건을 불식할 정도로 비보(裨補·부족한 부분을 채움)가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조종산(祖宗山·주산 위에 있는 주산)의 내력이 확실한 근본을 갖춘 노성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터에 있다. 즉 부실한 좌청룡, 우백호를 좌우의 행랑채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으며, 고택 앞쪽의 배롱나무 소나무 등 군락을 이룬 나무들과 장방형의 연못이 살기를 차폐시켜 고택의 생기가 흩어지지 않게끔 한다. 고택 앞의 나무들은 비보목(裨補木)이 되며, 연못은 비보못(裨補못)이 된다.
또한 고택 앞의 연못은 ‘재물’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고택의 땅기운이 새는 것도 방지하는데, 이를 ‘기계수즉지(氣界水則止·기는 물을 만나면 정지한다)’라 한다. 고택 앞으로 곧게 뻗어나가는 노성산성길은 ‘도로는 물이며, 물은 재물’로 여기므로 재물이 빠져나가는 흉수(凶水)로 볼 수 있으나 연못이 도로를 휘어지게 함으로써 흉(凶)을 길(吉)로 바꾸는 놀라운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주택은 거실의 기운이 좋아야 집안이 흥하게 되며, 고택의 경우 안채의 방들이 생기로워야 인재가 나고, 대청마루의 기운이 뛰어나야 집안이 번성한다. 현대는 방이 단지 잠을 자는 곳에 불과하고, 대개의 시간을 거실에서 보내므로 비록 방의 기운이 보통이라 하더라도 거실에서 생기가 솟으면 길택(吉宅)이라 한다. 명재고택의 사랑채는 대청마루에서 생기가 치솟고, 안채의 방들도 좋은 기운이 흐른다. 사랑채 누마루 전면 상부에 ‘이은시사(離隱時舍)’란 글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있다. ‘떠돌다가 때를 알고 은거하는 집’이란 뜻으로 기백이 넘치는 글에서 좋은 기운이 흐른다.
중문과 안채 사이에는 내외벽이 있어 안주인의 내밀한 공간을 보호하고, 외부의 세찬 바람을 순풍으로 변화시켜 생기의 흐트러짐을 방지한다. 안채의 건물은 사랑채에서 안채로 드나드는 협문이 있는 ‘튼 ㅁ자’ 형태로 바깥의 찬바람과 미세먼지, 소음 등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한 풍수적 지혜가 돋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안채 대청마루와 방에서 생기가 분출하니 인재가 날 수 있는 명문 고택이 아닐 수 없다. 명재고택은 대문과 담장이 없어 자칫 생기 보전이 어려울 수도 있었지만, 곳곳에 있는 비보물과 생기 넘치는 터가 이를 보완하여 명문가 고택이 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