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한 고교생이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병원들은 소아신경과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로 환자 이송을 거부했지만 의사 부족과 진료과목 쏠림에 따른 의료 공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19일 부산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전 6시 17분 한 고교생(18)이 학교 인근 길가에서 쓰러졌다. 구급차가 도착했을 당시 이 학생은 의식이 혼미한 상태로 경련을 일으켰다고 한다. 구급대는 이송이 가능한 병원 3곳을 포함해 8곳에 연락을 했지만 거부당했다. 환자가 성인이 아니어서 소아신경과 진료 대상이며, 병원에 전문의가 없어 응급 처치 후 배후 진료가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 사이 1시간이 흘렀고 심정지 상태에 빠진 뒤에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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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2월 20일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에서 집단이탈하면서 부산 한 대학병원의 입원환자가 협력병원으로 전원되는 모습. 국제신문DB |
대한민국 제2도시라는 부산 도심에서 고교생이 병원을 전전하다 숨진 사고는 우리 의료체계의 민낯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외과 신경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 소위 ‘돈이 안되고 힘만 드는’ 진료과목 기피로 만들어진 의료의 불균형이 초래한 비극이다. 최근 수년간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오픈런’ 등 의사 부족과 진료과목 불균형에 따른 의료 공백은 심각하다. 그럼에도 의대생 증원의 칼을 빼들었던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 저항에 번번이 백기를 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시절 의대 증원을 시도했다가 포기했고, 윤석열 정부 역시 큰 폭의 의대 증원을 밀어부쳤지만 결국 백기 투항했다. 의료계의 실력 행사로 의료 현장에 큰 공백이 생겼고,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과 불편을 느낀 민심은 돌아섰다. 앞으로 어떤 정부도 의대 증원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쓰디쓴 교훈만 남겼다.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지역의사제다. 의대 졸업 후 일정 기간 지정된 지역이나 기관에서 의무 복무하는 조건으로 정부로부터 교육, 주거 지원 등을 받는다. 의료계는 이번에도 반발한다. 10년의 의무 복무 기간이 과도하고, 근무지 제한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또 의무 불이행 때 의사 면허 취소는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수도권과 특정 진료과목에 쏠린 의료 자원을 배분하고 사회적 공익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이 실시한 설문에서도 제도 도입 찬성(77%)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국회도 지역의사제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8일 지역의사제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빠르면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가 의대정원 추계 결과를 내놓는 2027학년도 정원부터 제도가 적용될 전망이다. 법안을 보면 지역의사제 전형 중 일정 비율은 해당 지역 학생을 선발하고, 의무 복무 기간은 10년으로 정했다. 근무지역은 지역별 의료 수요를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지역의사제 도입을 통해 지역 간, 진료과목 간 의료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의료는 모든 시민의 기본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