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정년’이 처음 명문화된 것은 1880년대다. 독일제국 통일 이전 행정개혁 상징이었던 프로이센 왕국의 공무원법에 정년 연금 유임 규정이 등장한다. 영국에서는 공무원의 정년을 65세로 규정하되 필요 시 5년 연장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포함한 공무원연금법이 1909년 만들어진다. 미국도 1920년대 연방공무원연금법에서 70세 정년을 규정했다.
동양권에서 가장 체계적인 정년 개념을 규정한 사례는 조선왕조의 통일법전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정년연장을 서술한 대목이다. ‘문무백관은 칠십(七十)에 이르면 치사(致仕)하라. 다만, 임금이 유임(留任)을 허락하면 예외로 한다.’ 나이가 일흔에 이르면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라는 것이고 임금이 허락하면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양에서 사실상 최초의 정년연장 제도를 명문화한 사례다.
최근 정년연장, 정확하게는 ‘65세 정년연장’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3일 열린 정년연장특별위원회 제1차 본위원회의에서 “정년연장은 고령자의 소득 공백을 메우고 연금 재정을 안정시키며, 숙련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긍정적 방안”이라며 연내 입법 추진 의지를 밝히면서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당장 내년 선거를 노린 선심성 정책이라고 폄하하거나 청년층 일자리를 빼앗아 세대갈등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 섞인 비판이 쏟아진다. 경제계도 기업의 경영난을 심화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년연장법 대신 ‘정년 후 재고용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기업의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구체적인 요구도 내놨다.
여론도 팽팽하다. 찬성하는 쪽은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감소, 연금재정 급감에 따른 부작용 완화, 소득공백으로 인한 노후빈곤 예방, 숙련된 인력의 고용유지라는 측면에서 정년연장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반대 측은 청년층 일자리 감소와 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를 가장 우려한다.실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최근 통계를 보면 지난 2016년부터 2024년 사이 55~59세 근로자 1명이 늘면 23~27세 청년근로자 1.5명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인협회(FKI)도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정년을 연장할 경우 5년 후 60~64세 고령 근로자 고용을 위한 비용이 30조2000억 원으로 늘어나고 이는 25~29세 청년층 90만 명을 고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서 반대 논리를 펼친다.
찬반의 논리는 각각 그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정년을 일방적으로 연장할 수도, 무한정 방치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사회적 합의다. 앞서 언급한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구조, 세대 간 형평성, 기업의 인건비 부담 등 복합적 난제를 풀어나가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20여 년 전부터 단계적인 정년연장을 이미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일본이나 지난해 열린 전인대에서 본격 시행을 선언한 중국 사례를 다각적으로 분석해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2013년 관련법을 개정해 ‘사업주는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는 규정을 도입하고 2016년부터 정년 60세를 의무화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당시에도 지금과 똑같은 논란과 우려가 제기됐다. 젊은층을 배려한 제도적 보완장치를 제안하는 목소리도 당연히 많았다. 하지만 실제로 청년층이 체감할 만한 보완장치는 부족했고 많은 기업들이 임금피크제 도입이나 자신들에게 유리한 재고용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제도도입 취지를 퇴색시켰다. 실제 기업의 꼼수대응에 피해를 본 노동자도 적지 않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오래전부터 정년을 명문화하고 고치고 바꿔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바탕에는 결국 젊은 청년층이든 나이든 고령층이든 모두의 삶은 행복해야 한다는 대명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믿는다. 정년을 몇 해 앞둔 고령층에 포함될 당사자로써 정책당국에 제안한다. 스스로를 ‘4포 세대, 5포 세대’라며 좌절하고 상실감에 빠진 우리 청년들을 보듬는 확실한 정책적 대안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들이 대한민국의 현재를 떠받치고 미래를 이끌 주인공이라고 말이다.
임훈 독자여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