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식물 잘피는 고대 식량이었다. 멕시코 원주민 세리(Seri)족은 잘피의 한 종류인 거머리말 씨앗을 빻아 꿀이나 바다거북 기름과 곁들여 먹었다. 미슐랭 3스타 셰프인 스페인의 앙헬 레온은 양식장에서 거머리말을 키워 요리에 활용한다. 빵이나 파스타에 밀가루처럼 넣거나 스페인식 밥 요리를 만드는 식이다. 앙헬은 2021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인터뷰에서 잘피를 ‘바다의 쌀’이라고 불렀다. “거머리말 씨앗은 소화 장애를 일으키는 글루텐이 없는 반면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은 우수해요. 현미처럼 껍질을 벗기지 않으면 바다 향이 살짝 나지만 껍질을 벗기면 누구도 해조류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스페인 연구팀은 최근 사람의 인위적 개입 없이 거머리말 씨앗을 1㏊당 3500㎏ 생산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면적당 밀 생산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잘피는 침수성 식물이다. 수심이 얕고 물살이 느린 바다나 강어귀에서 군락을 이룬다. 기후학자들은 잘피의 탄소 흡수력에 주목한다. 바다 면적의 약 0.2%에 서식하면서도 바다가 흡수하는 탄소의 10%가량 저장하기 때문이다. 침전물이나 유기 폐기물 같은 오염 물질을 흡수해 수질을 정화한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염습지·맹그로브와 함께 잘피를 3대 블루카본(해양탄소 흡수원)으로 지정한 이유다. 해양수산부는 2007년 거머리말을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해 관리 중이다.
낙동강 하구 매립으로 감소했던 잘피가 최근 증가세다. 경남대 김구연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2000년대 300㏊이던 을숙도·대마등과 명지 갯벌의 잘피 서식지가 최근 432.5㏊까지 늘었다. 1362㏊(축구장 면적의 1900배)에 달했던 1980년대와 비교할 순 없지만 반가운 징조다. 잘피의 귀환은 10년 이상 지속된 습지 복원 노력과 하굿둑 개방의 영향이 크다. 연안 개발을 멈추고 바닷물과 낙동강이 만나도록 수문을 열었더니 잘피가 돌아왔다.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최근 10년 새 낙동강 하구 온도가 0.9도 상승하면서 잘피 서식지 역시 위협받는다. 부산 경남 앞바다를 주름 잡던 숭어는 펄펄 끓는 수온에 사라졌다. 겨울 철새는 한 달이나 늦게 도착한다. 발전으로 포장된 인간의 욕망이 다시 꿈틀대면 잘피는 다시 사라질 것이다. 우리의 안전한 삶은 지구를 지켜야 가능하다. 잘피는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종이다. 잘피 보존을 넘어 낙동강을 잘피의 식량화와 해양탄소 제로를 탐구하는 허브로 키우는 건 어떨까.
이노성 미래전략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