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들이 있다. 놀면 불안한, 쉬면서도 뭐라도 해야만 되는, 쉴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에도 그 여유가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사람들. 어쩌다 온 국민이 알게 된 심리검사인 MBTI 유형으로 보자면, 생활양식이 계획형인 J 타입에 특히 이런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과도한 성취 지향적 가치가 미덕이 되어 온 우리나라에서는 심장박동수를 측정해 제대로 멍 때릴 수 있는 지를 경쟁하는 ‘한강 멍 때리기 대회’라는 기상천외한 대회도 있지 않은가. 놀랍게도 이 대회는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대회이다. 얼마나 우리가 잘 못 쉬거나 안 쉬기에 이런 대회까지 있겠냐마는,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쉬는 것은 심리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심리학에서 잠시 내려놓고 겉으로 보기엔 그저 쉬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의 가치를 잘 설명하는 것 중에 ‘부화효과(incubation effect)’라는 것이 있다. 인지심리학 수업시간에 부화효과와 통찰력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예시하는 일화가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이야기이다. 새로 만든 순금 왕관에 은이 섞여 있다는 소식을 접한 왕이 아르키메데스에게 왕관을 녹이거나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왕관이 순금인지를 알아내라는 명령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지 못한 아르키메데스가 일단 머리도 식힐 겸 목욕하려고 욕조에 몸을 담그는 순간, 욕조 밖으로 흘러 넘치는 물을 보면서 그 순간 부력의 원리를 깨달아 문제의 해결책을 찾았다는 이야기이다. 아하! 하는 그 순간 갑작스레 문제해결이 된 상태가 통찰(insight)을 획득한 것이라면, 왕의 명령이나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한 목욕이 바로 부화이다. 이처럼 부화효과는 부화 이전의 실패 이후, 과제나 업무를 멈추고 휴식하는 시간의 긍정적인 결과들을 보여준다.
일보 전진을 위한 후퇴처럼 보이는 쉼의 효과는 꽤 크다. 그저 아무 것도 안 하고 휴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은 우리에게 무척 소중하다. 우리 뇌가 일을 하는 방식, 즉 정보처리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무언가 처리되고 있음을 자각할 수 있는 외현적(의식적) 처리와 부지불식간에 처리하고 있는 암묵적(무의식적) 처리가 그것이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하는 동안 그의 뇌는 마냥 쉬고 있었을까. 의식적 수준에서 자각하지 못할 뿐, 많은 연구 결과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일관적으로 보고한다.
가장 권위 있는 심리학 분야 저널 중 하나인 ‘Psychological Bulletin’에 게재된 한 연구(Sio & Ormerod, 2009)에 따르면, 117편의 논문을 메타 분석한 결과 사람은 부화 조건에서 문제해결을 보다 더 잘한다. 이런 부화효과는 창의적 사고와 특히 관련이 깊다. 새롭고 유용한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인 창의성은 크게 세 가지(유창성 독창성 정교성)로 구성되는데, 유창성은 주어진 문제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빠르고 쉽게 산출하는 양적 측면이고, 독창성은 차별화 된 참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질적 측면이며, 정교성은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발전시켜 실행하는 측면을 나타낸다. 부화효과가 이 세 측면 중 어디에 효과가 있냐고? 예상하다시피, 세 측면 모두에 효과가 있다. 즉, 주어진 과제나 업무에서 벗어나 쉬는 것은 양질의 아이디어를 많이 낼 수 있는 데다, 그렇게 구한 답을 실제 구현하는 실행에도 도움이 된다.
지난 9월부터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 꽤 힘들었던 보직이 끝나고,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 때에 주어진 소중한 시간이다. 쉬면 불안한 유형의 사람인 내가 두 달간 쉬면서 든 주된 감정은 사실 죄책감과 불안이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죄책감과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나만 혼자 멈춰 선 것 같은 불안함. 나답지 않게 두 달간 정말 푹 잘 쉬었다. 두 달 동안 영화 서른 편 정도를 봤고, 읽고 싶던 책을 그야말로 읽어댔다. 소소한 국내외 여행을 맘껏 다니면서 최대한 일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으려 애썼다. 죄책감과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겠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도 쉼과 회복에 집중하며 보낼 작정이다. 아무 생각 없이 푹 쉴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여, 마냥 쉬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한 독자들과 부화효과의 의미를 나누고 싶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했던가. 아니다. 십보 전진을 위한 위장 후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