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항저우아시안게임에 e스포츠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을 때 한국은 7개 부문에서 금 2, 은 1, 동 1개를 따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상당히 욕을 먹었다. 그간 각종 게임 리그에서 우승은 거의 한국 몫이었고 이 기세라면 메달 싹쓸이도 가능하다는 기대가 컸다. 스타크래프트 유행 당시 1세대 프로게이머였던 신주영 씨는 외국 게이머들이 붙여준 ‘패스트 핑거’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했다. 그 흐름이 ‘테란의 황제’(임요환)와 ‘페이커’(이상혁)로 이어지고 있는데 고작 ‘금 2개’라니 양궁 금메달을 놓친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매출액 기준 세계 50대 게임사에는 한국 기업이 7곳이나 된다. ‘메이플스토리’의 넥슨, ‘마블퓨처파이트’의 넷마블, ‘배틀 그라운드’의 크래프톤을 비롯해 카카오게임 엔씨소프트 펄어비스 네오위즈 등이 주인공이다. 게임은 한국 콘텐츠 수출의 효자 종목이기도 하다. 연간 수출액이 12조 원으로, 전체 콘텐츠의 65% 가깝다. 게임 산업의 국가별 시장 점유율을 비교하면 부동의 1, 2위는 전통적인 게임 강국인 미국과 일본이고 최근 상승세를 탄 중국이 3위에 랭크돼 있다. 그 다음이 한국이다.
15년 만에 방한한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의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그가 한국에서 풀어낸 이야기 중엔 엔비디아를 막 창업한 1990년대 초반 그래픽카드(GPU)인 지포스를 팔기 위해 서울 용산전자상가를 기웃거렸다는 일화가 있다. 마침 한국에서 PC방 붐이 일기 시작했는데 게임용 컴퓨터에 지포스를 대량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엔비디아의 기반이 다져졌다고 소개했다. 게임용 그래픽카드 회사에 불과하던 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 시대를 선도하며 시가총액(5조 달러)이 독일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서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는데, 그 시작이 한국 게임이었던 셈이다. 경주 APEC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황 CEO는 유튜브 공식계정에 한국 헌정 영상까지 띄웠다.
한때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업계가 긴장했다. 그러나 “게임은 중독물질이 아니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한 마디에 관련 논의는 쏙 들어갔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수많은 백수를 구제했다는 말이 있다. 그게 아니었다면 방구석에 처박혀 밤낮 없이 손가락만 까딱이는 자식을 보며 속 썩는 부모가 하나 둘 아니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게임에 빠져 등교를 거부하거나 도박과 사채까지 손대는 청소년이 실제 존재한다. 게임 왕국의 빛과 그림자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