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엄길청의 문전성시] 격자와 적층이 주목받는 이유

엄길청 국제투자전략가·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 엄길청 국제투자전략가·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  |   입력 : 2025-11-06 19:04:20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미국 뉴욕의 맨해튼은 도로가 네모난 퍼즐 조각으로 된 대표적인 격자 도시다. 무려 2000여 개의 격자가 거대 도시 맨해튼의 내부를 반도체처럼 짜여서 도시를 이루고 있다. 중간에 브로드웨이라는 도로만 완만한 곡선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다 도시가 초고층 건물로 채워진 적층형 도시다. 격자와 적층 도시의 기원은 기록상으로는 그리스의 식민도시 밀레투스다. 이후에 만들어진 로마와 제국들의 격자와 적층 도시들은 밀레투스의 설계도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라비아 사막에 흩어진 국민을 거대한 격자와 적층의 도시 공간 안으로 집어넣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바로 네옴시티라는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앞세우고 인류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며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대혁신의 시기에 왜 격자와 고층화의 적층 도시 전략이 강력한 도시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는가. 들여다보면 도시 건축의 기초인 벽돌이나, 자율 이동 지능의 컴퓨팅 기반인 반도체나 실은 모두 형태가 적층의 격자다.

그러나 부산의 도시 발달 과정을 보면 마을들이 자연과 산세를 점점 차지하며 정주하는 방식으로 토지를 사용하여 길게 늘어진 세장형(細長型)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몰려든 피난민이 삽시간에 부산 일대 산이나 비탈로 올라가 거주지와 생활 터전을 급조하느라 도시 기반이 취약하다. 원 도시의 산복도로나, 문현동에서 적기(赤崎·감만동 우암동 일대) 용호동 해운대로 이어지는 해안가 구간이나, 영도 일대, 남부민동 송도 감천 등으로 이어지는 해안가 일대가 그렇다.

이런 방식의 도시 연결은 어느 한 곳의 우월한 장소가 힘을 집중하면 인근 지역 발전 여력을 흡수하고 나아가 세가 약한 지역을 소멸시킨다. 1990년대 이후 수영만과 해운대 일대의 고층화된 도시 신설은 인근 지역에서 자체의 격자와 적층의 도시를 스스로 갖지 못한 문현동 감만동 우암동 재송동 민락동 일대의 도시 상업성과 주거 발달성을 흡수해서 원 도시의 변화와 성장을 저해한 측면이 아주 크다.

부산의 원 도시 지역은 오래된 거주지인 데다 상업항으로서의 국제항구를 연하고 있다. 이런 곳이라면 국제적인 항구 도시에 가보면 가장 밀집이 강력하고 번화하고 지가도 높은 곳인데, 부산은 유독 그렇지 않다. 1990년대 이후 미개발지가 많은 동래 수영만 해운대 광안리 부근에 고층 주거 도시를 접어 넣어 역사를 가진 원 도시 지역을 고사시킨 때문이다. 과거에 부산항만의 도시 생산성을 들자면, 남포동 광복동과 국제시장 등이 좁지만 격자와 적층으로 도시를 안으로 채워 좋은 성과를 거둔 곳이며, 서면도 뒷길의 격자망이 받쳐주어 부도심 성능을 보여주었다.

산복도로나 해안가, 골짜기를 연한 부산 마을들의 발달은 그런 점에서 취약한 곳이 한두 곳 아니다. 부산시청이 옮겨간 곳이 시청의 위용을 살려 더 번듯한 도시로 성장하지 못한 것은 그곳이 원래 격자와 적층의 도시 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은 초량과 서면과 동래를 지나가는 통과 지역의 길목이었다. 도시는 역사와 자연을 등한히 하고 마구 만들면 안 된다.

이게 바로 도시국가로서의 세력과 이미지 차이가 뚜렷한 싱가포르와 홍콩이 같은 적층 도시이지만 결정적 성과의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다. 싱가포르는 전 구간이 격자에 적층이고, 홍콩은 부산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세장형 적층의 자연산이다. 그런 데다 홍콩은 이젠 도시국가로서의 자율성마저도 중국으로 넘어간 상태다.

부산에는 지금 격자형 도시망은 있으나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사상구 학장동 감전동 주례동 일대다. 이곳은 도시공업 지역으로 지정되어 그동안 도시산업 구역으로서의 역할은 지대했지만, 이미 오래전에 그 본래의 기능이 퇴색된 지역이다. 그런데 도로망은 귀하게도 격자로 잘 구성되어 있지만 도시 전반이 저밀도다. 부산시가 서부산 발전을 위해 이곳에 서부산청사(시 일부 부서와 산하 기관 입주 예정)를 설치하고, 스마트 도시로의 재생에 힘쓰고 있는데, 아직 속도나 성과는 아쉬워 보인다. 여기에다 민간의 재건축을 촉진해 적층화 정책을 가미하면서 더 역동성 있게 조건을 만들어 주면 이 도시 구역은 젊은 시민과 첨단 생산성의 구역이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사실 서부산 일대는 이전에도 산업 용지로서 역사가 깊고 성과도 좋았다.

요즘 젊은이들이 애용하는 제품 중에는 전에 없던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가 눈에 뜨인다. 미국 브랜드는 대개 해외 OEM 생산이지만, 지금은 실제 미국에서 만드는 물건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표다. 최근 미국의 생산 지역들도 주로 도시 안에서 부활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미국같이 오래된 선진 공업국들이 다시 도시 안에서 직접 생산할 수 있는 배경에는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기술, 소재, 에너지 혁신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선진국 증시의 동반 호황은 이러한 선진국 생산성 부활이란 서사를 담고 있다.

지난날 생산 도시의 위용을 지닌 부산이 이제 ‘메이드 인 부산’으로 재무장할 이유는 너무나도 많다. 부산항과 도시 전체가 생산성 증강을 무기로 다시 문전성시를 이룰 절호의 시기가 이렇게 다가온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자갈치 관광버스 주차 숨통 트인다…롯데 부지 무상사용
  2. 2주 13.7시간(비정규직 평균 근로시간)…‘초단시간 노동’ 덫에 갇힌 부산
  3. 3HMM, 본사 부산 이전…120명 업무 시작
  4. 4부산이 원했던 금융위원회, 결국 세종으로 간다…지역 반발 거셀 듯
  5. 5비온 뒤 14일 기온 뚝…부울경 최저 8~14도
  6. 6PF ‘돈맥경화’…해운대 옛 홈플·세가사미 개발 잇단 좌초
  7. 7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8. 8부산~마닐라 하늘길 넓어진다…‘부산앓이’ 필리핀에도
  9. 9국힘 ‘골프 특검법’ 예고하며 공세…주진우 ‘명 끊을 때’ 댓글에 與 격분
  10. 10민주 부산시당 “국제신문 정상화, 대주주·법원 나서야”
  1. 1국힘 ‘골프 특검법’ 예고하며 공세…주진우 ‘명 끊을 때’ 댓글에 與 격분
  2. 2민주 부산시당 “국제신문 정상화, 대주주·법원 나서야”
  3. 3법정 이어 국감까지…LH, 명지 폐토사 처리 뭇매(종합)
  4. 4[속보] 민주, '신천지 당원 가입 정황' 공식 확인
  5. 5이 대통령 "북극항로 시대 대비하는 부산과 동남권 미래 함께 열어가야"
  6. 6[속보]李대통령-트럼프 골프 라운딩?…靑 ‘한미정상 골프회동’ 대비 TF 구성
  7. 7[뭐라노] 금메달을 향한 두 가지 시선
  8. 8강경화 “한미 정보공유 제한, 풀기 어려운 현안…백악관 소통도 한계”
  9. 9경찰청장 대행 “한동훈 딸 의혹, 재수사 가능성 배제 안 해”
  10. 10“북극항로 경제성 철저검증…후속계획 반영을”
  1. 1HMM, 본사 부산 이전…120명 업무 시작
  2. 2부산이 원했던 금융위원회, 결국 세종으로 간다…지역 반발 거셀 듯
  3. 3PF ‘돈맥경화’…해운대 옛 홈플·세가사미 개발 잇단 좌초
  4. 4부산~마닐라 하늘길 넓어진다…‘부산앓이’ 필리핀에도
  5. 5올해 쌀 6만6000t 남아돈다… 농식품부, 대책 마련 나서
  6. 6AI인재 양성 지원금 94% 수도권 쏠림…부산 1.5% 불과(종합)
  7. 7“항만공사 통합 목적·절차 불투명” 여야 없이 질타
  8. 8상호금융 339곳 대출 연체율 10%
  9. 9코스피 급락…2달만에 ‘매도 사이드카’ 발동
  10. 10국세청 '체납관리단' 실적 보니…절반은 100만원 미만 소액체납
  1. 1자갈치 관광버스 주차 숨통 트인다…롯데 부지 무상사용
  2. 2주 13.7시간(비정규직 평균 근로시간)…‘초단시간 노동’ 덫에 갇힌 부산
  3. 3비온 뒤 14일 기온 뚝…부울경 최저 8~14도
  4. 4‘청문 부적격 2인’ 임명 고심…전재수 “치명적 흠결 못 찾아”
  5. 5남해 대장군지, 삼별초 이전 ‘위계 높은 건물지’ 확인
  6. 6김지용 중수청장 후보 “임은정 공개 비판,부적절 행위”
  7. 7홈플러스 인천 구월점서 칼부림 신고…6∼8명 부상
  8. 8“시민 1인 1스포츠가 일상인 부산으로”
  9. 9‘100원 등하교 버스’ 경남 전역 확대…기초학력전담교사도 늘려
  10. 10“복지시설 몇 년 일했지만 퇴직금 0원”…공공부문도 꼼수 채용
  1. 1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2. 2프로야구 한화, 신임 사령탑으로 류지현 국가대표 감독과 계약
  3. 3HJ重·동부건설, 소외층·골프 꿈나무에 3000만원 기부
  4. 4어깨 부상 김우민, 수술 대신 재활로
  5. 5최동원 어린이 야구교실, 출범 11년 만에 프로선수 배출
  6. 6롯데, 신인 전원 계약…유망주 박근서 3억에
  7. 7차준환, 이번 시즌 국가대표·대회 출전 중단…서울시청과도 결별
  8. 8과감한 샷 2R 버디 11개 폭발…유현조 ‘부산의 퀸’(종합)
  9. 9울주군, 삼남읍 교동리에 ‘울주실내테니스장’ 개장
  10. 101부 승격 향한 마지막 질주…부산아이파크, 막판 승점 쌓기 총력전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국제칼럼 [전체보기]
사라지는 것, 귀 기울일 것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기고 [전체보기]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사형 생중계
발탁해놓고 감찰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감서 국제신문 회생 지연 지적…대주주는 결단하라
비타민이라 속여 주사맞혔나…진실 규명 시급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부캉이가 북항에 던진 질문
개척자 정신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거울 속의 외계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