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주력산업의 핵심 업무가 점점 수도권으로 향한다. 요즘은 더 노골적이다. 부울경 주력산업이란 조선 및 기자재산업, 자동차부품업을 비롯한 제조업 해운업 물류산업을 말한다. 핵심 업무가 수도권으로 옮겨져 지역에는 부가가치가 낮은 업무만 남는 현상을 ‘주력 산업의 탈지역화’라고 부르고자 한다. 부산과 경남은 부산항을 중심으로 물류산업이 활발하다. 특히 경남은 방위산업, 기계공업, 자동차 산업, 조선업, 조선기자재산업이 발달했다. 울산 역시 국내 중화학공업, 자동차산업, 조선업 메카다.
하지만 이런 주력 산업이 실제로는 부가가치가 높은 알맹이는 수도권으로 가고 부가가치가 높지 않거나 이전 불가능한 업무만 지역에서 이뤄진다. 대기업집단의 창업 3, 4세들이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초창기 창업 정신은 사라지고 인재는 수도권에만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창업 세대와 달리 큰 어려움 없이 자란 이들은 미국 유학, 수도권 거주를 통해 지역 인재 대신 수도권에 핵심 인재가 있다고 믿는다.
HD현대 계열사 HD현대마린솔루션은 야반도주하듯 본사를 경기도 판교로 옮긴데 이어, 동국제강그룹 물류회사인 인터지스는 부산 본사를 껍데기만 남기고 서울로 옮기려는 조짐을 보인다. HD현대중공업에서 분사한 HD현대마린솔루션은 본사를 부산에 뒀다가 조선산업과 IT 결합이라는 명분으로 본사와 핵심 기능을 판교로 옮겼다.
더 눈여겨봐야 할 분야는 조선산업의 AI 접목이다. HD한국조선해양과 SK AX는 최근 제조 분야 AX혁신을 위한 공동 과제 발굴 및 실행 협약(MOU)을 체결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을 모태로 한 HD현대의 조선 분야 중간 지주사다. HD한국조선해양은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물적분할한 울산의 HD현대중공업을 자회사로 둔다. 전통 주력 산업인 조선업의 AI 접목을 수도권에서 하겠다는 의미다. 이 작업은 AI를 기반으로 조선 분야의 숙련공 의존도를 줄이려는 게 목적인데 조선 분야의 AI 일자리는 수도권에서 창출되고 지역에서는 일자리 감소가 예상된다.
충격적인 부분은 여태까지 부울경이 비교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선박 부문(HD현대)과 해운물류(인터지스) 업종마저 수도권으로 이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지역 대학과 지역 청년들의 탈지역화를 더욱 부추기게 된다. 지역대학도 서울로 옮기려 할지도 모른다.
기업이 특정 지역에 본사를 두고 활동을 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지역 일자리를 지켜내고 지역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것은 국가는 물론 지역민들과 지방자치단체 몫이다. 기업이 떠나면 일자리가 없어지고 없어진 일자리 때문에 인구가 줄고 도시는 축소된다. 지역에서 스타트업이 생겨도 규모의 경제가 되지 않고 시장은 수도권에 있기 때문에 이 스타트업들도 성장하면 수도권행을 택한다. 이러한 기업의 탈지역화에 대해 부산시 경남도 울산시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지자체는 지역에서 생산 활동을 하면서도 그 기능을 점점 축소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합법적인 틀 안에서 불이익을 줘야 할 것이다. 경쟁사 지원을 통해서라도 ‘탈지역’이 전략적 실수라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대신 지역에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특혜에 가까운 지원을 해야 한다.
전력반도체 업체들이 부산으로 옮겼더니 지원은커녕 무관심을 받기 일쑤였고 인프라가 미흡하고 인력 구하기도 힘들었다는 하소연이 많았다. 이런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대안은 무엇일까. 지자체장이 공무원을 평가할 때 기업들의 부산 체류 상황, 직원 채용 등 어려움을 살피는 부분에 대해서도 평가 체계를 마련해 이를 잘 하는 공무원에게 가점을 주는 게 필요할 것이다. 형식적으로 법인 설립만 하고 실질적으로 활동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지원도 재고해야 한다. 형식적인 이전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년 6월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유권자들은 지역 기업 관리를 잘 못하는 지자체장에게 회초리를 반드시 들어야 한다.
정옥재 서울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