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나고 자라서 30여년 만에 다시 돌아와 부산에 살게 된 나에게 가장 놀라운 풍경 중의 하나는 달라진 온천천의 모습이었다. 봄이면 벚꽃이 만개해 천변을 걷는 사람이 가득했고, 잘 정비된 산책로, 자전거길로 걷고, 뛰고, 자전거 타는 풍경이 보기 좋았다. 곳곳에 마련된 농구장, 배드민턴장에서 즐겁게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반가웠다. 그리고 온천천을 품은 금정구 동래구 연제구 등 자치구에서는 철마다 다양한 행사들로 주민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기억은 범어사 아랫동네와 부산대학교 근처에서 살던 어린 시절로 빠르게 시간여행을 떠난다.
금정산에서 발원하는 온천천은 범어사 계곡에서는 발 담그고 물놀이를 할 정도로 물이 맑았지만, 청룡동에서부터는 생활하수가 섞이고 구서동쯤 와서부터는 산업도로 주변으로 늘어선 공장들에서 흘러나오는 산업폐수까지 합류해 빛깔과 냄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온천천에 변화의 조짐이 만들어진 계기가 바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이었다.
올림픽은 서울에서 하는데 부산이 왜? 유일하게 바다에서 하는 올림픽 종목인 요트를 수영만에서 한 덕을 본 것이다. 전세계에서 오는 손님을 맞는데 더러운 바닷물에 어떻게 들어가게 할 수 있느냐며 수영만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가 떨어졌다. 도시고속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온천천과 수영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우뚝 서있는 거대한 항아리 모양의 정수시설이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완공되었고, 컬러사진과 함께 신문에도 대문짝만한 기사가 났었다.
그리고 온천천 주변 학교들에 총동원령이 떨어졌으니, 갑자기 오후 수업 대신 전교생에게 비닐봉지 하나씩을 쥐어주고 온천천 정화를 해야한다며 부산대학교 전철역 아래로 내려보낸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더러운 물가에 모여든 중학생들은 집게나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봉지 하나씩 들고 천변에 있는 쓰레기들을 주웠으니, 냄새가 나도 더러워진 손으로 코를 막을 수도 없고,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불만의 아우성 속에서 천변을 어슬렁거리다 돌아온 기억만 생생하다. 군사정권 시절이니 가능했던 일이지, 지금 같으면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저런 사연을 품은 우리의 온천천은 물도 깨끗해지고 주변도 정비되어 이제는 시민의 여가공간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4대 문명이 모두 강에서 비롯된 것처럼 인간은 물가에서 자원을 일구고 삶을 영위해왔다. 그리고 이제 도시에서 물가는 삶의 기본적인 원천을 공급받는 자원을 넘어 여가를 즐기고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문화적인 공간으로 그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금정구에서부터 바다와 만나는 해운대구 수영구까지, 괜히 예산을 들여가며 물가를 꾸미고 갖가지 행사들을 개최하겠는가.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또하나의 하천으로 동천이 있다. 물비린내가 좀 나지만 ‘똥천’이라 불렸던 시절의 그 검고 끈적한 액체에 비하면 이것 또한 경천동지할 변화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광무교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동천으로 합류하는 지류가 모두 몇 개인지 정확하게 아는 부산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해방 이후 부산으로 몰려드는 엄청난 사람들이 살아갈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동천의 그 많은 지천 위로 도로가 깔리고, 건물이 세워지고 그렇게 물길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묻혀버렸다. 이제 그 물길 위를 덮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걷어내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부산시도 부전천을 덮은 복개도로를 걷어내고 동천으로 이어지는 물길을 만들어 서면 일번가를 물이 흐르는 도심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이미 다 세워놓은 걸로 알고 있다. 젊음의 거리와 전포 카페거리, 사잇길에 비해 그 위용이 예전만 못한 서면일번가를 살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물길을 만드는 거라는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고, 다른 여러 도시의 사례들이 충분히 그걸 입증해주고 있다.
언젠가 서면의 물가에서 시민이 즐겁게 노는 풍경이 실현되는 날을 기다리며, 올 10월 우리 부산진문화재단에서는 서면 복개도로 위에서 축제를 연다. 자동차 대신 물이 흐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와 즐겁게 노는 시민의 모습을 그려보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