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21년 ‘세계의 유산’이라는 타이틀로 피리 독주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 연주회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전통문화에 주목하여 우리 민족이 간직해온 문화예술의 저력을 무대에 담아내고자 했다. 당시 공연에서는 판소리 아리랑 가곡 연등회, 제주 해녀문화를 모티프로 한 현대음악 작품들이 피리와 서양 작곡가와 연주자들의 협업으로 초연되었다. 전통의 울림이 피아노 하프 클라리넷 등 서양 악기와 어우러져 새로운 감각으로 되살아났고, 전통이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예술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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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윤의 피리 독주회 ‘세계의 유산’ 연주모습. |
내년 2026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부산에서 열린다. 세계 각국의 문화유산 전문가들이 모여 인류가 함께 지켜야 할 문화와 자연의 자산을 논의하는 국제회의로 산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 나아가려는 부산에 큰 의미를 지닌다. 세계유산위원회는 1972년 전 세계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심사하고 보존하는 협약을 시작으로 2003년에는 인간이 쌓아온 지혜와 생활의 산물인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을 새롭게 채택했다. 이러한 보호 협약은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국제적 보호 체계 안에서 재평가되는 계기를 마련하고, 서로 다른 문화권의 연대와 상호 이해를 도모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총 23개 종목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종목은 판소리(2003), 아리랑(2012), 농악(2014), 영산재(2009), 김장문화(2013), 한산모시짜기(2011) 등 전통 예술과 의식, 생활문화와 공예기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분포한다. 이는 단순한 전통의 보존을 넘어 공동체 삶과 예술적 독창성을 지닌 문화만이 무형유산으로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특히 아리랑은 공동체적 연대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유네스코는 아리랑을 다양한 지역과 세대에 따라 수천 가지 형태로 변주되며 공동체의 정체성과 연대, 인간의 창의성과 공감을 구현하는 문화적 플랫폼으로 평가했다. 유네스코의 자료에 따르면 아리랑은 정선·진도·밀양 아리랑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약 60종의 지역적 버전이 존재하며, 그 안에는 3600여 가지의 변형으로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후렴 속에 한국인의 희로애락과 정체성이 녹아 있는 아리랑은 지금까지 지역과 세대, 가사와 선율에 따라 끊임없이 재창조되며 전승되어 왔음을 잘 보여준다.
아리랑과 더불어 농악 역시 공동체의 힘을 보여주는 중요한 무형유산이다. 야외에서 연행되던 농악을 무대예술로 발전시킨 사물놀이는 1978년 김덕수패 사물놀이에 의해 처음 선보이며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이끌었다. 그 모태가 된 농악은 2014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농악은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정월대보름이나 세시 행사 등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늘 함께한 공동체의 흥과 신명을 아우르는 장이었다. 유네스코 등재 심사에서 농악이 높이 평가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라져가는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전승되며 모두가 함께 즐기는 공동체 예술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효율성과 개인화가 만연해 공동체 결속력이 약화되는 시대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은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힘을 보여준다. 과거의 노래와 연희가 현재도 향유되고 세계 속 새로운 콘텐츠로 재창조되는 아리랑과 농악은 단순한 전통을 넘어 문화적 연대를 가능케 하는 플랫폼으로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