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이에 맞춰 곳곳에서 많은 독립운동가의 활동에 주목한다.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는 단연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 1885~1943)’ 선생이다. 안희제는 경남 의령 출신으로 부산에 ‘백산상회’를 설립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으며,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항일투쟁을 벌였고, 중앙일보 사장을 역임하며 항일 언론활동을 전개하는 등 그의 삶은 오로지 독립을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또한 발해농장 발해학교를 설립해 독립사상을 고취시켰으며, 대종교를 통해 민족정신 고취에 힘쓰다 체포되어 잔혹한 고문을 받다 병보석 이후 바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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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산 안희제의 편지. 개인소장 |
안희제는 독립운동에 피해를 끼칠 것을 염려하여 동지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 자신과 관계된 자료를 모두 없애버려 현존하는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상해임시정부의 60%나 되는 운영자금을 지원하면서 많은 문서를 교환했을 텐데, 관련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얼마나 치밀하게 임시정부의 과업을 수행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필적은 주변인에게 안부나 사무적인 일을 전하는 편지 몇 통이 남아 있는 것 외에 거의 없다. 백범(白凡) 김구(金九),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과 함께 ‘삼백(三白)’이라 불린 인물치고는 사후의 흔적이 너무나 쓸쓸하다.
그에 관한 기록이 묘연한 중에 마치 광복 80주년을 기념이라도 하듯 귀중한 편지 한 통이 새로 발견되었다. 1918년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운영하고 있던 안희제가 밀양에 사는 유학자 퇴수재(退修齋) 이병곤(李炳鯤, 1882~1948)에게 보낸 것이다. 내용은 안희제가 인쇄 기계를 소유하고 있던 이병곤에게 석곡(石谷) 이규준(李圭晙, 1855~1923)의 원고를 출판해 달라는 부탁을 담고 있다. 한문에 한글 토를 단 글을 붓으로 썼는데, 사연이 많아 길이만도 1미터가 훌쩍 넘는다. 편지 속에는 안희제의 조카인 안호상(安浩相, 1902~1999)도 등장하는데 편지와 관련된 네 사람이 모두 독립운동이나 민족의식 교육과 관련된 인물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이병곤이 사는 밀양 퇴로리는 여주 이씨 집성촌으로 이 마을의 많은 인물들이 독립운동 자금 모집, 근대 교육 등 항일운동에 관여했다. 이병곤은 경학과 신지식을 고루 갖춘 ‘신구겸전의 큰 선비’라는 평판이 있었다. 집안에서 세운 정진학교(正進學校)를 맡아 경영하다 강제 폐교되면서 반일인사로 몰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또한 안희제가 출판을 부탁한 저자 이규준은 본래 유학자이나 한의학에도 밝은 인물이었다. 서양의 역법이나 수학을 논한 책을 읽고 개화된 사상을 갖게 되었다. 의학의 연구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한의학보다는 새로운 한의학 이론을 제창했다.
편지의 내용 속에 직접적인 독립운동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행간 속에서 식민치하에서 민족의식이 투철했던 인물들의 삶의 일면을 볼 수 있다. 편지 한 통에 불과하지만 오로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희제의 인간관계나 사상적 면모를 가늠할 수 있다는 면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할 만하다. 더욱 많은 자료가 발굴되어 안희제의 불굴의 정신이 세상에 더욱 많이 드러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