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쟁이 할매집’으로 불리는 음식점들이 있다. 이 음식점을 가는 이유는 맛과 가성비 때문이다. ‘마음이 푸근해진다’ ‘옛 생각이 난다’ 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맛도 없고 비싸기만 하다면 누구도 일부러 ‘욕’을 들으러 가지는 않는다. 오죽하면 ‘아재비 떡도 싸야 사 먹는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일까. 이러한 논의는 대체재가 있어 경쟁이 가능한 시장을 전제로 한다.
장터 같은 사회적·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사회과학적 개념의 ‘시장’을 처음 설명한 사람은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18세기 영국의 애덤 스미스였다. 그 후 시장과 경쟁의 개념은 다른 영역으로도 확대된다. 언론과 사상, 표현의 자유는 ‘자유로운 경쟁에서 살아남는 쪽이 진실에 가깝다’는 믿음을 전제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옳은 쪽이 언론과 사상의 시장에서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자본 권력 정보 비대칭성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가 언론인의 자유가 아니라, 언론 소유주만의 자유인 한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정책과 인물이라는 상품을 내세워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다는 점에서 정치판도 일종의 시장으로 볼 수 있다. 당선된 이들은 ‘예산’과 ‘정책’의 결정권을 갖는다. 미국 시카고대학 정치학 교수 데이비드 이스턴은 이 같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 ‘정치’라고 정의했다. 예산만큼 금방 이해되지는 않겠지만 정책도 중요한 자원이다. 정치에서의 자원 배분은 공정한 절차를 거쳐 필요한 곳에 형평성 있게 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산업화 시기인 1969년만 해도 시골이던 경북 구미에 당시의 최첨단 전자공단이 들어섰다. 구미는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이었다. 1972년 박정희는 부산에서 새로 회사를 설립하거나, 기존 공장이라도 증설할 경우 다른 도시 대비 지방세를 5배 더 내도록 법을 제정했다.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제조업체들을 등 떠밀어 부산 밖으로 내보내는 이 법은 1995년에야 폐지되었다. 부산은 김영삼의 정치적 고향이자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야당의 도시였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자원의 ‘전략적 배분’의 결과 학업과 일자리를 위해 청년들이 찾아오던 부산이, 지금은 청년들이 1년에 1만여 명씩 탈출하는 도시가 되었다. 부산 거주 30대 인구의 54%는 결혼도 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서울 다음으로 높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부산의 15개 구와 1개 군 가운데 11곳이 소멸위험 직전이다. 2024년 3월 기준으로 소멸위험에 처한 전국 17곳의 광역시 구·군에 부산의 11개 구가 들어있다. 부자들의 상징인 센텀시티를 끼고 있는 해운대구도 소멸위험 지역이다. 부산의 2023년 기준 1인당 개인소득은 2403만 원으로 대구에 이어 꼴찌에서 2위이다. 음식이 맛이 없고 비싸고 주인이 불친절해도, 다른 식당을 물리치고 굳이 그 식당만 이용하겠다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이다. 그렇게 해서 경쟁이 없어지면, 경쟁이 가능한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식당 주인은 당연히 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몇 년 전 화제가 되었던 “나는 고향이 ○○”라서, 나라를 팔아먹어도 특정 정당을 찍겠다는 한 상인의 발언은 그래서 무섭다. 김대중 정부의 증권거래소, 노무현 정부의 북항 재개발과 공공기관 이전, 문재인 정부의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제정 같은 ‘전략적 배분’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최근 IMF(국제통화기금)는 2025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0.8%로 낮춰 전망했다. 한국에서 1% 미만 성장률은 80년 오일쇼크, 97년 외환위기, 2020년 코로나 충격 때뿐이었다. 전망도 밝지 않다. 지역소멸·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의 지속 가능한 미래는 없다. 3가지 문제의 근원은 지역소멸이다. 지역이 소멸하면서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 저출산, 고령화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그런 점에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정부의 균형 발전 정책의 첫걸음이자 시금석이다. 지난달 부산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수도권 과밀로는 지속 성장이 불가능하다”며 “지역 균형 발전은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해수부 이전을 통해 부산을 “대한민국 남단의 해양 수도권”으로 조성하고, 북극 항로 시대에 걸맞은 항만 물류·해운 전략의 전진 기지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17세기 해상 무역과 조선, 항만의 중심지 암스테르담이 그런 사례다. 대통령의 타운홀 미팅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모두 불참했고, 서울 언론들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선거용 카드’라고 비난하고 가덕도 신공항 철회를 주장한다.
명분 있는 정책에 반대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장기적으로 검토해보자는 시간 끌기이고 두 번째는 원론 찬성 각론 반대이다. 세 번째는 본질과 관계없는 꼬투리 잡기이다. 지역을 살리면서 선거에도 도움이 되는 정책은 부당한 일인가? 도랑 치면서 가재 잡거나, 임 보면서 뽕도 따는 일은 정말 나쁜 일인가? 이미 잡은 고기는 절대 먹이를 더 주지 않는다. 특정 브랜드에 충성도가 낮고 브랜드 비교를 통해 선택을 쉽게 바꾸는 변덕스러운 고객만이 대우를 받는다. 시장에서도 그렇고 정치판에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