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는 이미 열려 있습니다. 중국이 제일 열심히 다니고 있고, 우리는 못 들어갈 뿐입니다. 부산이 북극항로의 수혜자가 될 수 있지만 엄정하게 보면 지금도 많이 늦었습니다.” 기자가 해양 국책연구소 관계자에게 북극항로 개척과 부산항 거점화 전략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듣기에 따라선 이재명 정부가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과 함께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북극항로 담론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발언이다. 그러나 여러 공공 민간 전문가들이 비슷한 견해를 가진 걸 확인하고는 한번 더 놀랐다.
북극해에 대한 관심을 정부 차원에서 처음 언급한 건 이명박 정부다. 이후 한국은 북극이사회(AC) 회원국엔 끼지 못해도 중국 일본 등과 나란히 정식 옵서버 자격을 얻었다. 본지의 ‘부산항 제3의 개항-북극항로 리포트’ 기획시리즈가 보도된 게 이 무렵이다. 2013년 3월부터 8회에 걸쳐 십수년 내 열릴 북극항로의 기회와 의미를 집중 조명했다. 우리는 북극 인접국인 러시아 미국 캐나다는 물론이고 중국 일본보다 훨씬 늦었으나 지금이라도 뛰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국회가 움직이고 부산시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4선이었던 서병수 의원은 북극항로포럼을 조직해 본지 기자를 토론회에 초청했다. 박정희 정부 초대 경제2수석비서관을 지낸 한국 조선업의 대부,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은 “이런 보도를 해줘 고맙다”며 한참동안 기자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고 들었다. 당시 81세였던 그는 심포지엄에서 해양기술상의 여러 난점이 거론되자 “선배들이 난관 앞에 물러섰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박근혜 정부에서도, 문재인 윤석열 정부에서도 북극항로 어젠다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각 정권이 이명박 정부의 이니셔티브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코로나19 사태와 정치적 격변이 연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부산시도 다르지 않았다. 허남식 시장이 부산발전연구원에 북극연구센터를 만들고, 서병수 의원이 부산시장 당선 후 한동안 관심을 보이는가 했으나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 센터마저 오거돈 시장 때 폐지됐다. 부산시정에서 북극항로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다.
국민의힘 시장이나 민주당 시장 모두 북극항로를 밀고 가지 못한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우선 이 문제가 부산시 개별 차원에서 접근하기엔 역부족이다. 국제협력, 조선, 항만개발, 항로 상에 위치할 국내 지자체간 조율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해수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간 역할 정리는 논의 초기부터 강조됐었다. “중앙정부는 정책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부산은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게 12년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원장의 제언이자 본지 시리즈가 내린 결론이었다.
정부가 미온적이면 부산시라도 계속 보챘어야 하는데 이마저 안 됐다. 단체장으로선 치적으로 내세우기 좋고 주목도가 높은 신공항이나 엑스포 같은 사업이, 씨 뿌리는 사람과 열매 거둘 사람이 다른 장기 프로젝트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단체장 한 사람의 혜안과 비전에 도시 운명이 바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산시는 최근에야 북극항로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용역을 발주하느라 분주하다. 꺼져가던 북극항로 불씨를 다시 살려낸 게 이재명 대통령이니 박형준 시장으로선 부담스러울 것이다. 한편에선 북극항로 주무부처인 해수부의 전재수 장관이 차기 부산시장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북극항로 개척은 부산시만으로도, 해수부만으로도 불가능하다. 박 시장이나 전 장관에 더해 정부 전 부처의 협력이 강조되는 이유다. 정부가 해수부 단독 과제로 이를 넘긴다면 훗날 북극항로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대선용 구호로 소비했다는 평가만 낳을 것이다.
부산항 개항 149년만에 처음으로 부산의 지구적인 지정학적 중요성을 일깨운 게 북극항로다. 부산에서 로테르담항까지 운항거리(1만2700㎞)는 동북아 경쟁 항만인 요코하마(1만3523㎞)나 상하이(1만4875㎞)보다 훨씬 짧다. 조선·조선기자재·선박 수리 인프라, 항만 규모와 글로벌 인지도, 인력 양성 시스템 등에서 부산을 능가하는 곳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거의 없다.
정부의 외면과 부산시의 무기력이 십수년 지속되는 동안 북극 얼음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었다. 한국과 함께 북극이사회 옵서버국이던 중국은 그 사이 상하이를 기점으로 50여 차례 북극항로를 다녀왔다. 부산항의 북극항로 거점화는 12년 전에도 늦었고 지금도 늦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한 강제 개항, 산업화에 따른 정책 개항에 이어 북극으로 향하는 세번째 개항은 우리나라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기회다. 이 역사의 순간을 잡느냐 마느냐는 오늘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