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 올해 처음 시행된 ‘국악의 날’은 2023년 제정된 국악진흥법 시행령에 따라 세종 29년 음력 6월 5일 ‘세종실록’에 ‘여민락’이 처음 기록된 날을 기념해, 국민과 함께 즐기는 전통음악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제정되었다. 이미 우리는 한양 천도 600주년 기념으로 지정된 1994년 ‘국악의 해’를 경험한 바 있다. 이를 통해 국악이 이렇게 친근할 수 있다는 정서적 공감대를 넓혔고, 국악을 다시 생활 속으로 불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국악의 날’ 제정은 국악이 전통이라는 뿌리를 딛고 어떻게 미래로 뻗어갈 것인가에 대한 정체성과 방향성을 구체화 시킬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마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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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열린 소리숲 연주모습. |
1890년대 갑오개혁으로 국악은 독립적인 궁중음악 기관이었던 장악원이 내무행정 기구 소속 장악과로 축소되면서 궁중음악의 체계적 전승 기반이 흔들리게 되었다. 또한 전통과 근대의 문턱에 있던 이 시기 새롭게 유입된 서양음악과 교육제도를 왕실에서 적극 수용하려는 흐름과 충돌하면서 국악은 비효율적 전근대 음악으로 평가절하되어 전통예술의 문화적 가치가 축소되는 계기는 물론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지는 전통음악 침체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시기의 국악과 서양음악의 문화 충돌은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서 묘사되는 오스만 제국의 세밀화 화가들의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 오로지 신의 관점으로 평면화된 세상을 그리는 세밀화가는 철저히 화가의 개성을 숨겨야 하는 이슬람 전통 회화와 유럽에서 들어온 원근법과 인간 중심의 사실주의 화풍 앞에서 문화적 혼란을 겪는다. 전통 이슬람 회화의 규범과 질서를 지키려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화가와 반대로 베네치아의 빛과 그림자를 흉내 내며 숨겨놨던 자신의 개성과 스타일을 부각시키려 했다. 결국 이 두 화풍은 충돌을 넘어 융합되어 이후 ‘오스만 바로크’라는 새로운 양식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문화 충돌은 국악 역시 그러한 시기를 거쳤고, 올해 처음 시행된 국악의 날은 전통이란 이름으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새롭게 만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미 오늘날 국악은 더 이상 스스로의 울타리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도 누군가는 피리와 바이올린을 함께 무대에 올리며 새로운 어법을 만들어내고 있다. 클래식 현악기와 전자음향, 재즈와 현대무용, 심지어 AI와 함께 연주되는 국악 등 단순한 퓨전을 넘어 새로운 정체성을 탐색하고 있다.
우리는 전통과 현대, 국악과 서양음악이 마치 파묵의 세밀화가들이 그러했듯이, 대립이 아닌 상생으로, 충돌이 아닌 공존의 관계로 양립해야 한다. 필자는 지난 6월 28일 근현대역사관에서 열린 호국보훈의 날 특집 연주회에서 피란수도 당시 부산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를 피리와 바이올린, 피아노 그리고 소프라노가 함께하는 무대를 선보였다. 이처럼 서로 다른 음악이 만나 새로운 어법을 만들어가는 흐름 속에서, ‘국악의 날’ 제정은 전통이라는 눈과 미래라는 렌즈로 공존의 길 위에선 국악이 과거와 미래를 잇는 살아 있는 예술로 거듭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