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1960년대 초반까지 시골에서는 짚신을 신었다. 삼한시대부터 유물로 나온 짚신은 가야 신라 백제의 사적지에서 다수 출토된 바 있다. 짚신을 신고 먼 길을 가려면 헝겊으로 발을 감싸고 나서 짚신을 신게 되는데 그걸 감발이라고 하며, 그런 차림새 과정을 신발이라고 한데서 오늘의 신발이 유래된다고 관련 연구들은 전한다.
한국의 신발산업은 고무신 생산이 테이프를 끊으면서, 한때 세계 생산 1위의 기록을 차지하며 지구촌의 발을 감쌌다. 한국의 고도성장기이기도 한 당시의 대부분 신발공장은 부산에 있었다. 완제품은 수출용이 가장 많았고, 고무 등 원자재가 수입품이어서 항도 부산이 생산과 수출의 최적지였음은 물론이다. 당시 전국의 신발 도산매업자들은 넘쳐나는 주문을 대느라고 신발공장 앞에서 진을 치고 몇 날을 기다리며 번호표를 받던 시절이었고, 규모가 큰 도산매업자들은 정말 가마니에 돈을 담아와서도 겨우 소량으로 배분되는 신발을 받아 가기 일쑤였다. 삼화고무(범표·부산진구 범천동)가 있던 교통부 로터리(현재 범곡 교차로)와 국제고무(왕자표)가 있던 동구 범일동 일대는 시장과 시외버스 정류장이 그래서 더 발달한 장소였다. 그런 문전성시의 장소들이 지금은 다 흔적도 없이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어디든지 사람이 잘 모이는 곳은 유구한 시간의 유산이고, 장소의 염력이라 절대 홀대하면 안 된다.
서울만 하더라도 주거 문화 예술 관광 등으로 요즘 핫하다는 뚝섬 성수동 일대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쇠락한 도시 내의 허름한 공장부지였다. 그러나 시간을 조선시대로 되돌려보면 전국의 생산물들이 집하하고, 다시 분배되는 조선 팔도의 유명한 장터이자 나루터(광나루)였다. 강 건너의 송파장터 나루터에서 팔도의 짐을 실은 배가 건너와서 도성 안으로 들어가는 성곽 문전의 장터로서, 바로 그곳은 전국에서 온 상인들이 짚신을 바꾸고 헝겊을 다시 감싸는 소위 ‘신발’을 하고 돌아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 일대 뒷마을이 바로 성저십리(왕궁으로부터 십리)의 끝이라 하여 지금의 왕십리이다. 그런데 지금 그 자리 일대 골목 안에 수제신발을 만드는 젊은 아티스트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이것이 바로 장소의 힘이고 선대의 유산이고 도시의 생업터전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구두를 만드는 제화산업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유명한 브랜드의 구두 제조공장이 거의 그 일대에서 발흥했다. 그런 자리에 지금은 수제화 아티스트들을 찾아 손님들이 온다. 물론 그냥이야 찾아오고 있겠는가. 지자체나 지역 주민들의 노력과 보살핌이 있어서 더 효과가 눈에 보인다. 아이돌 가수를 배출하는 유명한 기획사 또한 그 일대에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관광객이 더 많이 찾아온다. 어느 유명 기획사 사옥에 가보면 국내외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회사 안을 돌아다니면서 기획사 업무광경을 체험하고 구경하라고 실내의 방문자 구경 코스와 관람 동선을 자신들의 업무 라인 속에 잘 담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지금 교통부 로터리 일대에 가면 이런 고무신 타가기 번호표 동네란 영광의 흔적은 전혀 없다. 그보다 더 흥했던 범일동 일대도 아무 기척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뿌리를 남기지 않으면 싹은 다시 그 자리에서 자라지 않는다.
스웨덴의 말뫼라는 도시는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을 마주 보는 항구 산업도시이다. 두 나라를 바다 밑을 통해 철도가 다니기 전까지 말뫼 항구는 문전성시였다. 지금은 기차로 많은 일이 이루어지면서 이전의 부둣가의 역할은 쇠락했다. 얼마 후 그들은 말뫼의 항구를 새로운 도시로 만들기 시작했고, 부두 자리에는 거대한 조형물과 첨단 도시공간들이 새롭게 채워졌다. 항구도시 말뫼의 전성기를 이어가자는 야심작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기차를 타고 바다를 건너 스웨덴 말뫼 기차역에 내리면 그 신박한 공간이 먼저 손님을 맞는다. 그러고 나서 말뫼 시가지로 걸어서 나가게 되어 있다. 코펜하겐 사람들이 말뫼로 이사 와서 자기 나라로 출근하기도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부산을 찾아와서 부산역에 내리면 역사 왼쪽에 자리한 부산의 부두는 방문자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항도 부산이 이렇게 부두를 홀대해도 되는가. 이건 부산 세관에서부터 중앙동까지의 중심 부둣가도 마찬가지이다. 부산사람이 너무 무심한 탓인가, 아니면 부산에는 바다가 너무 흔해서 그런가. 일본 요코하마는 산업 항구로서의 부두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자 ‘미나토미라이’라는 멋진 신도시를 부두에 직접 건설해 영화로운 장소로 이어가고 있다. 부산 북항처럼 왕년의 시내와 동떨어진 자리에 세운 게 아니라 옛 부두를 다시 오늘에 연결한 장소이다.
손님을 맞으러 버선발로 뛰어나서는 대문 간은 대청마루에서 가까워야 한다. 부산의 대청마루는 부산의 관문 바다와 너무 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산의 대문은 누가 뭐래도 우리의 바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