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의령군은 경남도의 중앙에 자리한 군으로 동쪽은 창녕군, 동남쪽은 함안군, 서쪽과 북쪽은 합천군, 서남쪽은 진주시와 접하고 있다. 의령은 산세와 지세가 뛰어나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이라 불리며 조선을 구하는데 맹활약을 한 의병장 곽재우, 전 삼성그룹 회장 이병철, 백산상회를 설립해 군자금을 조달한 안희제 등이 있다. 백산 안희제(1885~1943)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의령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해 각지에 배포, 군민들의 봉기를 촉구했다. 또한 그 해에 백산상회를 백산무역주식회사로 고쳐 재편한 후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조달기관으로 만들었다. 1925년에는 중외일보를 인수해 중앙일보로 개칭하고 사장이 되어 일본의 총독정치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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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제 생가의 안채. |
의령군 부림면 입산마을에 안희제가 태어난 생가가 있다. 마을 입구에는 이곳이 명당임을 암시하듯 마을을 빛낸 인물들에 대한 약력이 적혀 있는데, 그를 비롯해 안준상(제헌의원) 안호상(초대문교부장관) 안균(초대민선군수) 등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인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사람이 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터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첫째는 지리(地理)가 좋아야 하고, 둘째는 생리(生利·땅에서 생산되는 이익)가 좋아야 하며, 셋째는 인심(人心)이 좋아야 하고, 넷째는 산수(山水)가 좋아야 한다.
물론 지금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조선시대라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조건들이며, 당시의 조건에 부합하는 곳이 지금의 입산마을이다. 마을 초입의 도로 양옆에는 노거수(老巨樹·수령이 오래된 나무) 두 그루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마을 입구는 기(氣)가 드나드는 곳이라 수구(水口)라 하며, 수구는 작은 배 한 척이 드나들 정도로 좁아야 생기의 유출을 막을 수 있다. 입산마을의 입구에 있는 노거수는 수구를 좁게 하고 마을의 생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비보목(裨補木)이다.
안희제 생가는 주산(主山·뒷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용맥(龍脈·산줄기)이 상하로 기복(起伏)하고, 좌우로 요동(搖動)치면서 힘차게 하강하다가 전진을 멈춘 곳에 있기에 생기가 충만하다. 또한 생가 앞쪽에 낙동강의 지류인 유곡천이 생가를 둥글게 감싸면서 흘러가므로 땅기운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틀도 갖추고 있다. 즉 안희제 생가는 주산이 받쳐주니 생기가 뭉쳐져 있고, 물(유곡천)을 만나니 땅심이 강하다. 이를 두고 ‘기승풍즉산, 계수즉지(氣乘風則散, 界水則止·기는 바람을 맞으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정지한다)’에 빗대어서 말한다.
생가의 대문을 들어서면 담장을 마주하게 된다. 대문으로 들어온 흉풍(凶風)이 담장을 먼저 때리면서 순한 바람으로 바뀐 후, 이 바람이 집안 전체를 감싸게 해 좋은 기운이 머물도록 한 풍수적 지혜가 엿보인다. 게다가 대문 안쪽의 땅심이 좋으므로 작은 대문을 설치해 생기가 외부로 빠지는 것을 방지했다. 안희제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 등 3동으로 돼 있다. 사랑채는 앞면 4칸 규모의 초가 건물로 안채와 매우 가깝게 붙어 있다. 대체로 안채의 기운이 좋으면 인물이 나고 집안이 번창한다. 안희제 생가 또한 안채의 대청마루와 좌측 방에서 생기가 분출한다. 백산 안희제가 1919년에 영남지방의 대지주들을 규합하여 백산상회를 부산에서 제일 큰 백산무역주식회사로 만든 근간이 안채의 생생한 기운을 받은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