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일상속에서 난데없는 비상계엄이 발동되었다. 군과 경찰이 국회에 난입하는 혼란 속에서 비상계엄 해제결의안이 통과되고, 이후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는 계엄령을 ‘야당 폭거’에 대한 경고성 의미의 ‘국민 계몽령’으로 정당화했을 뿐, 수사·재판을 받고 있는 장관, 군·경찰 간부 등에 대해 책임자로서 품격을 갖추지 못했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을 위배하여,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다”고 판결하고 대통령을 파면했다.
증인으로 나온 이진우 수방사령관과 여인형 방첩사령관 등은 군인의 명예를 말하면서도 자신이 검찰 조사에서 진술한 대통령의 의원 체포지시, 발포명령과 기타 비상계엄의 위헌성과 불법성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할 수 없다” “답변이 제한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반면 수방사 제1경비단장인 조성현 대령과 특전사 대대장 김형기 중령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고자 항명했으니 자신들을 항명죄로 처벌하고, 국민에겐 군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입법부가 군과 경찰에 짓밟히는 초법적 상황에서 야당의원과 시민은 국회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총부리에 맞서고 있는데, 집권여당은 “전후 사정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국회 밖 당사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계엄해제 요구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또한 윤석열과 계엄, 법원 폭동, 극우 유튜버, 부정선거론을 옹호하면서 민주 국가의 공당이 이런 세력들에 부하뇌동하고 있다.
한편, 대통령 파면에 따른 대선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지 9일 만에 전례없이 빠르게 유죄취지로 파기환송됐다. 많은 법학자는 “외관상 담보해야 할 최소한 공정성마저 저버린 졸속재판” “사법부의 이런 정치개입행위는 민주적 선거절차를 저지하려는 반헌법적 행위”로 비판한다. 민주당은 최악의 경우 대법관에 대해 탄핵소추를 고려하고 있어 사회적 갈등은 비등하고 있다. 이 판결 즉시, 계엄과 무관하지 않은 한덕수 권한대행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고 사퇴, 엄중한 국제환경에서 전대미문의 ‘대행의 대행의 대행체제’로 국민은 불안하다.
비상계엄 이후 이런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법과 제도적 측면보다 ‘엘리트 카르텔’을 작동하는 고위 공직자들의 행태에서 유발되고 있어 우리사회의 명예 수준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회가 지속적으로 존속하기 위해 세가지 유형-법, 윤리, 도덕-의 규범적 통제 방식이 작동된다. 윤리와 도덕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윤리는 주로 타인과 관계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행동을, 도덕은 개인의 양심이나 선악 판단능력, 즉 자기완성과 관련된 규범이다.
법은 가장 강한 구속력을 지니지만 그 외연은 상대적으로 가장 작다. 도덕은 개개인의 행위 지침으로 작용하지만, 법과 윤리에 비해 구속력은 가장 약하고, 윤리는 중간 정도의 외연과 구속력을 특징으로 한다. 또한 법은 전체 사회, 도덕은 개인에 관련된다면, 윤리는 사회적 집단과 관련된 특유한 규범이다. 독일 사회학자 짐멜은 ‘명예는 윤리의 일부로 사회적 조정과 통합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규범체계 가운데 하나’로 규정했다. 즉 외적 수단으로 통제하는 법적 차원과 내적 통제를 가하는 도덕 차원이 명예에서 하나의 통일체를 이룬다. 따라서 명예는 실증적으로 제정된 법과 개인의 도덕 간 매개수단으로 작동하면서 강한 사회통합적 기능을 지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군인의 명예다. 군조직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무력을 소지하고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국가에서 군인의 명예는 존중돼 왔다. 그러나 김성근 사단장이 말한 “군인은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도록 훈련되는 존재”라든가 주진우 의원처럼 한 사병의 죽음 정도는 “군장비 파손”으로 여기는 군문화에서 군인의 명예는 자랄 수 없다.
또한 이번 비상계엄처럼 특정집단이 명예를 방패 삼아 군을 수단화하여 진실을 은폐하고 자신들의 사적이익을 도모한다면 엄청난 사회적 분열과 갈등이 초래된다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근대 사회가 시장경제를 통해 전문화 분업화와 효율화를 추구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개인과 집단으로 파편화되면서 명예의 사회적 통합기능이 약화되어 가고 있다. 명예개념이 사라진 사회는 자체의 윤리적 붕괴를 통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초래하고 결국 실체적 붕괴로 이어져 소멸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존속하려면 이번 계엄사태처럼 법이 개입할 수 없고 도덕의 양심적 보증만으로는 신뢰하기 힘든 상황에서 민주시민이 보여준 용기와 명예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올바른 행태를 보증하는 제도와 문화를 창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