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인 1984년 여름, 필자는 부산시민회관에서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1839~1881)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이란 음악을 처음 만났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음악 영화 ‘환타지아’의 한 부분이었다. 그때 필자는 음악으로 꾸는 악몽을 처음 경험했다. 이 작품은 술에 취한 젊은이의 꿈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말이 맞다면 그 청년은 바로 무소르그스키 자신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으니까.
러시아 음악가인 무소르그스키는 부유한 환경에서 나고 자라며 어릴 때부터 음악을 익혔다. 하지만 음악원이 아닌 사관학교에 입학해 군인이 되었다. 졸업 후에는 황제의 근위부대 장교로 복무하다 그만 두었다. 가세가 기울자 하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공무원으로 일했다. 20대의 청년인 무소르그스키에게 음악은 본업이 아니었지만 28세 때 ‘민둥산의 하룻밤’을 썼을 정도로 재능이 있었다. 30세 때에는 걸작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내놓았는데 오페라 내용이 불온하다며 러시아 제국 공연계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만다. 35세 때에 자신의 이름을 길이길이 남게 할 ‘전람회의 그림’을 내놓았다. 지금도 우리가 다 아는 그의 작품들은 이렇게 35세 이전 젊은 시기에 작곡되었다. 말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젊었던 30대 후반부터 그는 음악가로, 개인으로 심각한 침체기에 빠졌고 결국 42세에 요절한다. 때 이른 죽음의 원인은 술이었다.
청년 장교 시절인 17, 8세부터 음주를 시작한 무소르그스키는 공무원이었던 20대 중반에 알코올 금단 증상의 하나인 ‘진전섬망’을 겪었다. 이미 심각한 중독 상태란 말이다. 걸작 ‘민둥산의 하룻밤’도 이 무렵 작품이므로 ‘어느 청년’이 아니라 알코올 금단기 증상의 하나인 생생한 악몽이 소재였을 가능성이 크다. 모친의 죽음, ‘보리스 고두노프’ 상연 금지 등이 전도유망한 청년 음악가를 술독에 빠뜨린 계기로 보인다. 술 때문에 공무원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결혼도 못 했다. 말년에는 친구들의 도움에 의탁해 살 수밖에 없는 잉여인간이 된 것도 모두 술 때문으로 보인다.
무소르그스키는 1881년 2월 반복되는 경련 발작에 극심한 공포 등등(진전섬망의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후 술을 끊고 잘 먹고 쉬면서 다행히 건강을 되찾는 듯 보였다. 하지만 생일을 축하해주러 온 형이 준 돈으로 몰래 술을 사 마신 후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부검 소견으로 알코올성 간경화 심장병 신경염이 나왔다. 마지막 결정타를 먹인 것은 뇌출혈로 보인다(과음 후에는 혈압이 오른다). 결론적으로 음악가로 원숙해질 나이인 42세에 그의 목숨을 걷어간 결정적 원인이 술이었던 것이다.
알코올은 뇌를 어떻게 망가뜨릴까? 장기간의 과음은 신경세포 자체를 죽이고 혈관을 망가뜨린다. 한편으로는 대뇌 영역 간의 신호 전달 소통을 막는다. 그 결과 건망증, 판단 착오, 성격 변화 등이 보인다. 기분이 냉·온탕을 오가고, 과격해진다.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거나 편집증적 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나중에는 헛것을 보거나 들으며, 심지어는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며(작화증) 결국에는 치매로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술을 먹는 당사자는 물론 가족의 삶까지도 망가진다. 한마디로 알코올 해악은 당사자 개인을 넘어서 주변에 파급되니 사회적 질병이기도 하다.
소뇌나 평형계도 망가진다. 심해지면 술을 안 먹은 상태에서도 술 취한 것처럼 혀가 꼬이고 갈지 자로 걷는다. 말초신경이 망가지면 팔다리 감각이 둔하고 저린다. 치료는 한시바삐 무조건 술을 끊는 것이다. 빠를수록 좋다. 빠른 만큼 아직 멀쩡한 뇌를 보호하고 빈사 상태에 빠진 뇌세포들을 구조할 수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낸 우리나라 주류소비량 통계(2021년)를 보면 한국인의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8.3ℓ이다. 한 사람이 소주(20도) 115병(사흘에 한 병꼴), 맥주(500㎖) 332캔(매일 한 캔꼴)을 마시는 셈이다. 다행히 2015 년에 최고점을 찍은 후로는 꾸준히 감소해왔다. 술은 1군 발암물질이니 안 마시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사회 생활을 위해서 불가피하다면 과음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과음일까? 우리의 경우 평균 수준 음주량 이상이면 과음으로 볼 수 있다.
‘민둥산의 하룻밤’은 밤새 지옥으로 변하는 세상을 보여준다. 알코올중독자들이 금단 증상을 겪는 동안 밤은 공포 그 자체다. 주변을 둘러싼 사물들이 악귀들로 변하고, 몸에는 벌레들이 기어 다닌다. 밤새 악몽과 환각을 겪으며 잠도 설치고 두려움으로 몸서리를 친다. 하지만 두세 밤은 참고 견뎌야 한다. 그 시기만 잘 넘기면 푸른 빛이 투명한 창문으로 배어드는 어느 새벽에 환자들은 온 몸이 정화되어 새로 태어나는 듯한 경험을 한다(심한 숙취를 겪은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민둥산의 하룻밤’의 말미에 나오는 푸른 빛, 그 빛을 신호로 제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세상을 보면 알코올과 싸워 이긴 사람들에게 주는 새로운 삶의 기쁨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교의 묘약도 되고 몸과 마음의 독약도 되는 양날의 검 알코올, 슬기로운 노후 생활을 위해 당장 오늘부터 음주를 절제하는 습관을 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