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내일은 더 큰 파도를 타리라

왕정·민주정 등 장점 뽑아 로마 500년 공화정 누려

격랑의 높은 파도 위에서 앞날 멀리 내다볼 수 있어

김진식 정암학당 연구원·로마문학박사

  • 김진식 정암학당 연구원·로마문학박사
  •  |   입력 : 2025-04-30 18:45:56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키케로는 기원전 54년부터 국가 통치의 원리를 다룬 책을 쓰기 시작한다. 국가를 다룬 책이지만 키케로의 책은 플라톤의 ‘국가(pliteia)’와 달랐다. 플라톤이 제시한 국가는 역사적으로 존재한 적 없는, 다만 이론적이고 이상적일 뿐 현실에 없는 허상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이데아였다. 반면 키케로의 ‘치국론(de re publica)’은 이상국가의 현실적 모범이라 할 역사적 실례를 다룬다. 그건 바로 더없이 훌륭한 정치제도로 500년 가까이 입증된 로마 공화정이었다.

로마건국신화에 따르면 트로이아 유민들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열망으로 바다를 건너 이탈리아를 찾아왔다. 그들은 강을 타고 올라가 하구에서 멀리 떨어진 상류의 강가에 도읍지를 정했다. 바다를 통해 소리 소문 없이 기습적으로 쳐들어오는 적들로부터 도시를 보호할 수 있는 곳이었다. 또 도시에서 생산된 잉여 물산을 수출하고 부족한 물자를 밖에서 수입하는 데 유리한 곳이기도 했다. 나아가 흔히 아름다운 바닷가 경치에 취하고 바다를 통한 장사와 항해에 마음을 빼앗겨 늘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잦은 문화 왕래로 조상의 관습과 제도가 쉽게 변하고 타락하는 해안도시들과 달리 바닷가를 피한 로마는 말하자면 관습과 제도가 파도에 휩쓸려 표류할 위험이 없는 곳이기도 했다.

처음에 로마는 왕정이었다. 하지만 여느 왕정과 달리 종신직의 왕은 시민의 동의를 받아 즉위했고 시민은 왕을 혈통이 아니라 지혜와 덕을 갖춘 인물을 톺아 추대했다. 시민의 동의 없이 그저 혈통만으로 즉위한 왕이나, 혈통에 따른 왕을 몰아내고 권력을 찬탈하여 스스로를 왕이라고 주장한 참주만을 보아온 그리스인들에게는 일찌기 없었던 일이었다. 그렇게 추대된 로마의 왕은 시민의 지혜를 모을 기구를 창설하였는데, 나중에 원로원이라고 불리는 귀족들의 회합이었다. 왕은 시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나누어 줬고 다만 다수의 횡포로 국가적 위기가 초래되지 않도록 투표권을 교묘하게 분할하기도 했다.

또한 로마의 왕은 시민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농업을 장려함으로써 약탈과 노획이 아닌 평화와 공존의 정의와 신의로써 모두가 온갖 이득의 풍요를 누릴 수 있도록 시민을 가르쳤다. 이에 시민의 마음에 평화롭고 화합된 국가를 열망하는 온유가 확립되었다. 그래서 로마는 전쟁을 하면서도 정의와 법을 지켰고 전쟁 행위에 일체의 불의와 불경이 끼어들지 못하게 했다.

마침내 로마 시민은 왕의 가족이 저지른 악행을 목격했을 때 왕정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왕정을 폐지했다. 로마는 왕을 축출하고 왕을 대신할 최고 통치자로 집정관을 두기로 결정했다. 권한이 대폭 축소된 통치자였고 임기는 1년으로 단축됐다. 종신직 왕의 권력을 임기 제한으로 견제한 것도 모자라, 독재의 위험성을 방지할 목적으로 매년 2명의 통치자를 뽑아 서로 견제하도록 했다. 왕을 없앰으로써 인민의 자유는 보장되었고, 지혜롭고 정의로운 통치자를 얻을 기회는 확대되었다. 그리고 통치자의 판결과 처벌은 인민의 상소를 통해 견제받았다.

소수 귀족들의 전횡으로부터 인민을 보호할 자애로운 통치자의 역할을 집정관을 두어 유지했고, 대중의 어리석은 판단과 무모한 방종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할 지혜를 모을 귀족들의 원로원을 보존했고, 일인 혹은 소수의 독재를 막기 위해 인민의 투표와 선택으로 법을 제정하고 관료를 선출함으로써 인민의 자유를 보장했다. 그리하여 통치자는 충분한 권한을 갖고, 지혜로운 귀족들은 충분한 권위를 유지하고, 인민은 충분한 자유를 확보했으며, 각자의 권리와 의무와 직분이 공평하게 균형을 이룬 국가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로마는 왕정과 귀족정과 민주정의 장점만을 뽑아 새로운 종류의 혼합정을 창출했다. 이것이 이름하여 공화정이다.

그런데 역사가 500년 이상 쌓인 로마 공화정도 위기에 빠진다. 독재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두 번째로 등장한 독재자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너 무장 병력을 이끌고 수도 로마를 침탈한다. 그는 영구 독재관을 꿈꾸고 있었다. 가만히 있을 로마 시민이 아니었다. 공화정의 첫걸음을 내딛었던 조상을 본받아 브루투스가 다시 한번 공화정을 위한 칼을 들어 독재자를 처단했다. 누리던 자유를 박탈당했을 때 자유의 칼날은 더욱 잔혹한 법이다. 독재자의 권력이 법을 익사시키고 자유를 공포로 질식시킬지라도 법과 자유는 언젠가 다시 살아난다.

이탈리아를 향하던 배는 폭풍에 밀려 급하게 뭍으로 뱃머리를 돌렸고 바닷가에 내려 불을 피우고 저녁을 준비한다. 안도와 휴식의 포도주를 마신다. 지도자는 시민을 위로하며 말한다. 용기를 내라. 내일은 더 큰 파도를 타리라. 우리는 오늘보다 더 큰 위기의 격랑과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격랑의 높은 파도 위에서 우리는 멀리 앞날을 내다볼 수 있으리라.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조경태, 9일 봉하마을서 盧 참배…與 사하을 기초의원들 “복당 반대”
  2. 2니가 치면 나도 친다…프로야구 막판에 안타왕 쟁탈전
  3. 3양산선 개통 코앞인데…인력 충원 없다
  4. 4부산 복덩이 ‘부캉이’ 대선소주 모델됐다(종합)
  5. 5성장이냐 쇠퇴냐…부산이란 도시 운명은 이것에 달렸다
  6. 6전재수 “2028년 G20 정상회의 유치 도전”(종합)
  7. 7부산이 대륙 끝? 지도 돌려보면 북극항로 시작점
  8. 8골목길 외국어로만 채운 간판 15개…위법입니다
  9. 9김희정 의원 ‘대주주 회생동의 촉구’ 국제신문 농성장 찾아 응원
  10. 10동백전 캐시백 상향해 상권 온기…부산형 청년사다리 박차
  1. 1조경태, 9일 봉하마을서 盧 참배…與 사하을 기초의원들 “복당 반대”
  2. 2김희정 의원 ‘대주주 회생동의 촉구’ 국제신문 농성장 찾아 응원
  3. 3부산 기관장 후보 김태호·김명수, 시의회 인사청문서 부적격 판정(종합)
  4. 4李대통령 “능력 안되면서 큰자리 요구하다 안 되니 내부 공격”
  5. 5“여야 협치로 市 조직개편·추경 성과…다음은 민생·PK 초광역”
  6. 6이 대통령 지지율 직전과 같은 37%…민주당 35%, 국민의힘 26%
  7. 7‘정청래 비자 보류’에 민주당은 유감…국힘 “한미동맹 균열”
  8. 8李대통령 “우리 말과 글의 힘이 곧 대한민국의 경쟁력”
  9. 9박형준, 퇴임 후 첫 공개 행보… 총선엔 “아직 생각 없다”
  10. 10인천 해수욕장서 北유실지뢰 54일만에 또 발견.. "안전 유의"
  1. 1부산 복덩이 ‘부캉이’ 대선소주 모델됐다(종합)
  2. 2전재수 “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조속 통과…소급적용도 추진”
  3. 3산은 회장 “통합 LCC 본사 부산행 결정 땐 적극 지원”
  4. 4부산 찾은 외국인 올 1~8월 343만 명 돌파…프랑스 관광객 작년보다 111%↑
  5. 5[뉴스 분석] 수도권, 가덕신공항 또 트집…국책사업 발목 자성 촉구 목소리(종합)
  6. 6태웅, 1년 갈등 ‘봉합’…노사정 상생협약 체결
  7. 7부산항 오는 배 위치 실시간 확인
  8. 8‘극지해양 독후감’ 공모전 대상 고등부 김세형, 대학·일반부 하웅 씨
  9. 9지자체 ‘비상금’ 3년새 반토막…국고사업 매칭비는 23% 늘어(종합)
  10. 10[증시와이드] 실적 유지·턴어라운드 종목 선별 접근을
  1. 1양산선 개통 코앞인데…인력 충원 없다
  2. 2전재수 “2028년 G20 정상회의 유치 도전”(종합)
  3. 3골목길 외국어로만 채운 간판 15개…위법입니다
  4. 4동백전 캐시백 상향해 상권 온기…부산형 청년사다리 박차
  5. 5김척수 구청장 후보자 수사 7개월째 표류
  6. 6특혜 논란에도…엘시티 투자이민제 13년 실적 고작 2건
  7. 7“크루즈 관광객 동선, 부산항서 이바구길까지 넓힐 것”
  8. 8박완수, 우주항공·SMR 기반 메가 특구 공들여
  9. 9부산 동백중 교사와 학생 “우리는 와플처럼 달콤한 사이”
  10. 10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9일
  1. 1니가 치면 나도 친다…프로야구 막판에 안타왕 쟁탈전
  2. 2AG 4개의 金 호령한 바다의 왕자…“다음은 올림픽 포디움”
  3. 3막 오른 ‘HJ중공업·동부건설 챔피언십’…최예본·한아름 공동 선두
  4. 4“핸드볼 8년 만의 아시안게임 金…맏언니로서 기뻐”
  5. 5김영광, 보복 운전 사과 “운전 습관 돌아보겠다”
  6. 6가을야구 못간 롯데 자이언츠, 정규시즌 3위 승부처돼 난감
  7. 7SON A매치 최다골 대기록에도…뒤숭숭한 韓축구
  8. 8하현승, 계약금 16억에 키움 입단
  9. 9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10. 10롯데, KIA에 4-12 패…8회 7실점 ‘와르르’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국제칼럼 [전체보기]
누구도 법 앞에 국민보다 ‘더 평등’할 수 없다
배지의 실력행사
기고 [전체보기]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배우 한선화
유튜브 쇼츠 정치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삼전 영업익 107조 시대…미래기금 지방우대 필요하다
‘부캉이 열풍’이 던진 부산관광 활성화의 과제
세상읽기 [전체보기]
빚을 물려받는 사회
부자(富者)가 되고 싶다면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무(武)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