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반도체란 전력의 변환이나 제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반도체이다. 즉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인공지능 전기차 스마트폰 로봇 재생에너지시스템 등에서 전력의 손실을 최소화해 전력사용의 최적화를 가능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 전기차의 배터리에서 나오는 직류(DC) 전력을 바퀴를 구동하기 위한 전기모터에 전달하기 위한 교류(AC) 전류로 변환시키거나 높은 전압을 낮은 전압으로 바꾸어 주는 역할도 전력반도체가 담당한다. 전력반도체는 실생활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반도체이고 미래 모빌리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반도체이다. 또한 탄소중립 전환과 산업 디지털화의 핵심 부품이자 경제 안보 측면에서 고부가가치 기술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전력반도체는 글로벌 수요가 급증하면서 다양한 산업 분야로 활용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전력반도체 시장은 2021년 537억 달러 규모에서 2026년 747억 달러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도 이러한 추세에 맞춰 기술 주도권 확보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의 전력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대비 미미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반도체 분야에서 메모리칩은 강국이나 비메모리 분야, 그 중에서도 전력반도체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 남짓으로 주요국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이 57.7%를 차지하며 독주하고 있다. 전력반도체와 같은 분야에서 글로벌 선도 기업과 기술 격차가 크고, 국내 생태계도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국내 제조업은 전력반도체 부품의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아 공급망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실제로 2021~2022년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난이 발생했을 때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며, 국내에 전력반도체 공급 기반이 부족한 문제가 드러났다. 수요는 급증하는데 국내 공급망이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산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산업연구원 등도 “전기차와 AI 확산으로 전력반도체 수요가 폭증할 전망이지만 한국의 원천기술력과 산업 생태계는 여전히 취약하다”며 차세대 전력반도체에 대한 혁신과 체계적 육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 전력반도체 산업의 또 다른 문제는 업계 생태계의 빈약함이다. 메모리 분야와 달리 전력반도체는 오랜 설계 경험과 특화된 공정 기술이 필요한데, 국내에는 이를 전문으로 하는 대형 기업이 거의 없다. 소수의 중소 팹리스 또는 패키징 모듈 후공정 기업들이 존재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으며, 투자 규모나 인력 면에서도 한계가 있다. 반면 해외에서는 차량용 전력칩을 비롯해 광범위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춘 전문 기업인 인피니언, STM 등 유럽 업체 등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의 관심 부족과 산학협력 미흡, 그리고 정부 지원의 체계성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전력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은 후발주자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은 전력반도체를 미래 전략 산업으로 삼아 공격적인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SiC, GaN 등 차세대 전력반도체의 미국내 생산 기반을 확충하고 공급망 강화에 힘쓰고 있다. 유럽도 인피니언 등 자국 기업들의 설비 투자를 지원하고 EU 반도체법을 통해 역내 생산과 연구개발을 장려하고 있다. 중국 역시 거대한 전기차 시장을 바탕으로 전력반도체 자체 생산 능력 확보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부으며 수입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다. 이처럼 각국 정부가 앞장서 자국 기업을 뒷받침함으로써 기술 개발과 생산 거점 확보에 주력하고 있어, 향후 글로벌 주도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전력반도체 국내 공급망이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한국도 미래 산업 주도권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하는 과감한 전략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미래신사업 먹거리발굴에 집중하고 있는 부산지자체도 지금 보다 더 SiC, GaN 등 차세대 전력반도체 기술 개발과 국내 생산 역량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설계·제조·패키징·테스트 전 과정에 걸친 전문 기업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 해당 기업들의 노력에 더해 지자체의 전략적 지원과 대규모 인력 양성이 필수적이며, 특히 부품·소재의 국산화를 통해 취약한 공급망부터 보강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부산시에서는 전력반도체 소부장 특화단지와 기회발전특구를 조성해 8인치 SiC 전력반도체 생산 인프라와 테스트베드 구축, 기업 유치와 R&D 지원을 추진하며 국내 공급망 강화에 나서고 있다. 앞으로 부산이 이러한 전력반도체 생태계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하면 지역 제조업 경쟁력 제고는 물론 신사업 창출과 일자리 확대 등 지역 경제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