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사고로 외딴 섬에 불시착한 어린 소년들. 어른 하나 없는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아이들은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까. 다행히 섬은 ‘먹을 것도 있고 물도 있고 푸른 꽃들도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무엇보다도 위험한 짐승도 없다. 그러니 구조되기 전까지 서로 돕고 평화롭게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83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 이야기다.
섬에 고립된 아이들은 ‘소라’를 들고 있던 랄프를 대장으로 선출한다. 소라는 민주적 발언과 경청의 상징이며, 그 의미를 알려준 이는 ‘피기(새끼돼지)’라는 별명의 소년이다. 그러나 잭은 다르다. 그는 고기를 얻기 위해 사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군대를 조직하고, 그 군대는 점차 잭의 권력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변한다.
잭이 무기와 사냥 훈련에 몰두하는 동안, 랄프와 피기는 소라를 불며 아이들을 모아 규칙을 정하고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봉화를 피운다. 모두가 함께 머물 오두막도 짓는다. 처음에는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봉화보다 사냥이 더 중요해지고, 고기를 쥔 잭이 점차 힘을 얻는다. “나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었고, 나의 사냥부대는 너희를 짐승으로부터 보호해줄 것이다. 내 편에 들어올 사람은 누구냐?”
소년들은 대체로 12세 이하로 추정된다. 순진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지극히 판단력이 부족한 존재들이다. 잭이 만들어 놓은 고기의 유혹과 짐승에 대한 공포 속에서 아이들은 잭을 따르고, 결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던 소라는 그에 의해 산산이 조각난다. 랄프와 피기가 아무리 “이 섬엔 짐승 따위는 없다”고 외쳐도, 아이들은 공포심을 이용하기 위해 잭이 만들어 놓은 ‘짐승’의 존재를 믿는다. 결국 공포와 광기에 사로잡힌 아이들은 사이먼을 짐승으로 착각하고 집단 살해한다.
“일이 자꾸만 엉망이 되어가고 있어.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어. 처음엔 행복했는데…” 랄프의 한탄처럼, 그의 민주적 리더십은 잭의 폭력성과 권력욕 앞에서 무력해진다. 고기를 얻어먹고자 모여든 군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잭은, 랄프의 조언자이자 이성의 상징이던 피기를 살해한다. 피기의 죽음은 ‘웃는 남자’에서 빅토르 위고가 말했듯이, ‘사회는 책 읽는 사람과 생각하는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마지막 남은 랄프만 제거하면, 잭의 무리가 섬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
근대 사회계약론에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Leviathan, 레비아탄)’에서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며 경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권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된다고 했다. 그러기에 인간은 질서를 위해 강력한 주권자에게 권리를 위임해야 하며, 그것이 사회의 시작이다. 괴물 같은 인간들을 통제하기 위해 더 강력한 괴물 같은 힘, 즉 ‘리바이어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리바이어던은 성서에 등장하는 바다 괴물로, 하느님에 도전하는 파괴의 존재를 상징한다. 하지만, 홉스에게는 어리석고 폭력적인 인간 사이의 혼돈을 통제하는 절대 권위의 상징으로서 국민이 절대 복종해야 하는 존재다.
이 개념은 소설 속 ‘파리대왕’과도 맞닿아 있다. 잭이 꽂아둔 멧돼지 머리에 파리떼가 들러붙는 형상은, 잔혹한 권력자에게 복종하며 먹을 것을 얻는 대중의 모습을 닮았다. 파리대왕은 성서에 등장하는 악마 ‘바알제붑’의 영어식 번역어다. 종교적 해석을 차치하고, 이는 분명 공포와 악의 상징이다. 결국 선동하는 폭군과 그에 빌붙는 군중이 파리대왕이며, 그들이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던 ‘짐승’의 실체다. 결국, 그들이 두려워하던 ‘짐승’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다. 그러기에, “짐승은 우리 안에 있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이들에게 일깨워주러 가던 사이먼을 죽인 것 또한 다름 아닌 광기에 사로잡힌 아이들이다.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소설 속 ‘파리대왕’은 지혜롭고 이성적인 인간을 위한 존재가 아니다. 군중이 어리석고 폭력적이며 통제 불능일 때 등장하거나 요구되는 괴물 같은 통치자다.
따라서 이 소설은 인간이 선한가 악한가를 묻는 작품이 아니다. 다수가 생각과 판단을 포기하고, 민주적 논의와 경청이 사라질 때, 우리가 파리대왕이나 리바이어던의 지배를 스스로 불러들이게 된다는 경고다.
혐오와 폭력, 편 가르기와 권력 다툼은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가 찾아낸 소라를 깨뜨려버리는 순간, 그리고 다수의 국민이 공동의 선을 향한 이성적 판단과 생각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곳엔 또 다른 ‘잭의 무리’, 곧 ‘파리들의 대왕’과 ‘리바이어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