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이하 ‘폭싹’)가 우리의 마음을 훔쳤다. 최종회까지 공개된 이 드라마는 지난달 26일 3막(9∼12회) 공개 직후 비영어 부문 글로벌 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요즘은 어디 가나 ‘폭싹’ 이야기다.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올랐다. 드라마의 시간적 배경은 1960년부터 최근까지다. 3세대의 인생 여정을 담았다. 1950년생 관식(박보검·박해준)과 1951년생 애순(아이유·문소리), 이들의 딸 1969년생 금명(아이유)과 가족, 그리고 이웃들이 등장한다. 이는 드라마가 전후세대와 86세대(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출생), 즉 50∼60대 이상의 세대도 타깃으로 잡았다는 의미이다. 물론 97세대(1990년대 학번, 1970년대 출생)와 그 이하의 연령대 역시 타깃이다.
그런 만큼 ‘폭싹’이 전하는 메시지는 어느 연령대의 시청자라도 몰입하게 만든다. 시청자가 드라마의 시간대 어딘가에 자신의 자리를, 기억을, 추억을 넣고 보게 한다. 이런 측면에서 기자는 ‘폭싹’의 ‘복고’에 주목한다. ‘폭싹’은 복고를 입었다. ‘폭싹’에서 IMF 외환위기 당시 실직한 금명(‘학씨 아저씨’에 자신이 대기업에 다닌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였다!)이 취업정보지를 보며 직장을 구하러 다니는 모습, 금 모으기 풍경 등에서 우리는 그 시절 충격과 공포, ‘고난의 행군’을 떠올린다. 복고는 ‘지금, 여기’와 ‘공유’한다. 이는 드라마의 삽입곡만 봐도 알 수 있다. 드라마의 삽입곡은 서사의 보조장치다. 이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삽입곡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11회에서 ‘내 사랑 내 곁에’(1991)는 원곡 가수 김현식뿐만 아니라 ‘요즘 가수’ 다비치도 부른다. 최종회에서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1999)는 1991년생 임영웅이 부른다.
복고는 노스탤지어(nostalgia), 즉 향수(鄕愁)다.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이것은 독일의 문화학자 얀 아스만(Jan Assmann)이 규정한 ‘문화적 기억’에 연결된다. 문화는 공동의 경험과 기대 공간(행위 공간)을 만들어주는 ‘상징적인 의미체계’이다. 문화적 기억은 문화적 의미를 전승해주는 것이다.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만드는 사회적 기억이다. 아스만이 정의한 문화적 기억은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의 ‘집단적 기억’과도 같은 의미다. 문화적 기억도 상징 장치들에 의해 제도화된, 사후적으로 재구성된 기억이자 선택적 기억이다. 기억은 사회를 통해 얻어지고, 사회적으로 재생될 뿐만 아니라 인지되며 배치된다. 우리는 사회집단의 성원으로서 ‘기억하기’를 한다. 이 때문에 개인적 회상은 다른 이의 기억과 연결됨으로써 과거 속의 어느 한 지점에 자리 잡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과거를 지금, 여기로 소환해 소비할까. 왜 향수(鄕愁)에 빠지는 것일까. 그것은 존재론적 불안과 상실감 때문이다. 여기서 벗어나려는 욕망의 표현이 바로 향수다. 김왕배 선생에 의하면 향수는 과거를 아름답게 색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추억하는 과거는 예전의 그것은 아니다. 나쁜 기억을 걸러내는 까닭이다. 지금, 여기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일 따름이다. 영국 출신 음악평론가 겸 작가인 사이먼 레이놀즈(Simon Reynolds)도 대공황이나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들이 온갖 고난과 생명의 위험, 상실의 고통 등을 겪었음에도 해당 시기가 ‘생애 최고의 시절’로 여기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자가당착이다. 기자 역시 그렇다. 군 복무 때를 회상하면서 이등병이나 일병 때의 일은 걸러낸다. 다만, ‘군 말년’ 시절 느긋함을, 고된 전술훈련 이후 성취감 등을 골라서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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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까. 외적 자극제, 즉 트리거(trigger·총포류 방아쇠)가 향수를 일깨운다. 그것은 대부분 경제 불황이다. TV 드라마, 대중음악 등 대중문화의 복고 현상은 불황과 결을 같이한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흥행 폭풍’을 일으키던 2015년은 정초부터 불황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란 걱정으로 가득찼다. 그 해 12월에는 그 걱정이 현실화했음을 확인할 뿐이었다. 지금, 여기도 그러하다. 우리나라 전체 직업 가운데 종사자 수가 가장 많은 것은 ‘상점 판매원’이다. 자영업과 직결된다. 하지만 자영업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곳곳에 ‘임대’ 딱지가 붙어있다. 기자가 30년 넘게 즐겨 찾던 ‘최애’ 식당도 얼마 전 문을 닫았다. 소비가 멈춘 탓이다. 안 먹고, 안 마시고, 안 산다. ‘못한다’는 표현이 더 나을 듯하다. 드라마 ‘폭싹’에 보이는 애순의 첫 시집 제목은 ‘폭싹 속았수다’이다. 극중 평생의 반려자에 대한 헌사이다. 우리 어머니·아버지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조기대선이 불황의 실타래를 풀어내면 좋으련만….
오광수 편집국 선임기자